튀르키예어로 파자르Pazar는 일요일 그리고 장터를 의미한다. 신성한 일요일은 어쩌다가 장터와 같은 단어로 불리게 된 것일까?
추측해 보자면 일요일은 장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의 튀르키예에서는 모든 요일에 동네 어디선가 7일장이 열린다. 집 근처에서 열리는 시장을 놓쳤다면 다른 요일에 열리는 시장에 가면 된다. 하지만 자동차처럼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 없던 옛날에는 달랐을 것이다. 동네를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일요일에 모든 장이 열렸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각종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였을 것이다. 상인에게는 밥줄이 달린 곳이었을 테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한 주 동안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일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다음 한주를 준비하는 필수적인 행동, 장보기가 이루어지는 날짜와 장소를 같은 단어로 사용하면 절대 까먹을 수 없고 소통도 편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굳이 파자르(일요일)에 파자르(시장)에 간다고 말할 필요 없이 파자르 한마디로 모든 의미 전달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장은 꾸준히 방문하는 곳이다. 영국에서 종종 시장에 가서 채소와 과일을 사기 시작했고, 튀르키예에 와서는 매주 시장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장터는 걸어서 5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공터 주차장에서 토요일마다 열린다. 금요일부터 차들이 몰려 들어서 구역을 잡고 토요일에 북적하게 장이 열리고 일요일이면 쓰레기 봉지가 뒹굴거리는 공터가 되었다가 월요일이면 다시 깔끔한 주차장이 된다.
터키에서 제일 맛 좋은 채소를 고르라면 토마토와 오이;)
처음 시장에 갔을 때 형형색색 야채와 채소들의 모습에 눈이 즐거우면서 엄청난 소음에 긴장했다. 동네에서 분출할 곳을 찾지 못했던 활기와 웅성거리던 공기가 장터에 다 몰리는 듯했다. 몇 번 방문하면서 어떤 소리들이 이곳을 채우는지 알고 나니 시장의 에너지에 나 역시 동참하는 기분이 든다. 손님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자신의 매장으로 발걸음을 당기기 위한 상인들의 외침이 시장을 가득 채운다. 아비(형님), 아블라(누님)이라는 호칭이 과하게 자주 들린 나머지 딱히 나에게 하는 말도 아닌데 내 뒤를 따라다니는 듯하다. 성량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일부러 문장 구조를 파괴한 말을 구사하며 사람들의 귀를 불편하게 만들어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거기에 채소와 과일이 잔뜩 담긴 비닐봉지가 양손 가득 쌓이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어느 매장에서 어떤 걸 사야 가장 값싸고 신선한 식재료를 얻을 수 있는지 의논하는 소리도 생기 있는 배경음악으로 시장에 깔린다. 이곳에서는 생활의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말린 과일과 견과류, 각종 올리브를 파는 파자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파는 품목은 채소와 과일이고 당근, 오이, 고추, 파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식재료들도 많다. 다른 점은 배추, 무, 깻잎, 각종 버섯을 보기 힘들고 토마토, 올리브와 파슬리, 딜, 민트 등 각종 허브가 종류별로 가득한 매대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시장에 갈 일이 없었다.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주말에는 밥을 사 먹는 등 끼니를 밖에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삼시 세끼를 고심하며 고민할 필요 없이, 회사 식당 메뉴판 앞에서 끌리는 음식을 선택하거나 배달앱을 뒤지며 그때그때 메뉴를 골랐다. 배달 음식, 외부 음식으로 채워진 일상에는 시장 가기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가끔 집 근처 마트에 들러서 생필품 몇 개나 간식거리 정도 사도 삶이 문제없이 굴러간다. 잘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뭘 먹고 사는지 들여다보지 않으니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서 그렇다고 쉽게 치부하기에는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아서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른 체했다. 입고 사는 것, 자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쉽게 변화를 꾀할 수 있으면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먹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먹을 음식을 직접 해먹기 위해, 굳이 시장에 가서 값싸고 좋은 식재료를 구하는 수고로움을 하니 나를 아끼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시장 가기는 나를 먹여주고 아껴주는 일 중 하나가 되었다.
세척까지 완료해서 깔끔하게 포장된 식재료들을 마트에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을 더 내어 시장에 가는 것은 나에게 작은 여유의 상징이다. 시장에서는 직접 채소와 과일을 눈으로 보고 만져 보며 고를 수 있다. 줄지어 늘어선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어디 물건이 가장 좋은지 찬찬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 사는 신중함과 여유로움이 있다. 매주 얼굴을 보는 상인과 가끔은 친해져서 할인을 받기도 하고 좋은 물건을 추천 받기도 한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장에서는 계절에 따라 파는 채소와 과일도 변화한다. 사람 냄새와 자연의 순리가 공존하는 시장에서 나를 위한 식재료를 고르는 일. 그 일을 위해 매주 일요일에 나는 시장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