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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Oct 21. 2023

헬랄 올순. 당신은 나에게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튀르키예 장례식에서 외치는 말 

밤 열한 시 즈음, 시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이 전화로 “그래? 우리도 갈게.”라고 말하는 걸 듣고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시외할머니는 약 반년 전부터 침대에 누워만 계셨다. 스스로 옆으로 돌아 눕지 못하셨고 숟가락을 들 힘도 없으셨다. 하루를 더 살아낼수록 죽음의 생김새가 선명해지는 듯했다. 다 늘어진 테이프 같이 느리게 진행되는 우리의 죽어가는 속도만이 정상처럼 느껴졌고, 초를 다투며 선명하게 바스러지는 할머니의 죽어가는 속도가 비정상 같았다. 어쩌면 그 모습이 우리의 미래와 가장 닮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먼 미래에 있을 것 같던 죽음이 순식간에 오늘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채 짐을 대충 챙겨 마마(나는 시어머니를 마마라고 부른다)네 집으로 갔다. 슬픔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문득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 마마는 어떤 슬픔이 위에서 잔뜩 쏟아져 내린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슬픔이 미처 밖으로 흘러넘치지 않게 하려는 듯,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어디론가 휩쓸리지 않으려고 자꾸 허공을 보고 혼잣말을 되뇌셨다. 


시외할머니는 부르사(Bursa, 튀르키예 북서쪽에 있는 도시로, 튀르키예에서 네 번째로 많은 인구가 사는 도시) 옆 도시에 있는 허브 농장에서 외삼촌과 함께 지내고 계셨다. 가족 모두 허브 농장으로 갔다가 날이 밝은 대로 시신을 부르사로 가져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바로 시신을 염해서 묘지에 안장하려면 부르사에 누군가 남아서 수속을 마쳐야 했기에 나와 남편이 남기로 했다. 


할머니께서 떠나는 모습을 봤더라면, 또는 할머니의 죽은 시신을 직접 본다면 더 빨리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을 받아들이고 생각이 거기에 머물렀을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서 내내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의 기억에 얼굴을 파묻었다. 


일 년 전 즈음 시외할머니를 처음으로 만났다. 농장에서 다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내내, 거실로 자리를 옮겨 소파에 앉아 있을 때에도 나는 끊기지 않는 시선을 느꼈다. 외국인이라서 튀르키예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하니, 말을 거는 대신 눈빛으로 계속 나를 뒤쫓으셨다. 차를 마시며 할머니는 남편에게 내가 이슬람교 신자냐고 물었고, 아니라고 대답하자 언제 알라(Allah, 이슬람교의 하나님)를 믿을 거냐고 되물었다. 불편한 질문에 진지하게 응하는 대신 농담으로 넘기려고 불교 신자라고 대답했고, 남편도 덩달아 부처를 믿고자 공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사탄이라며 지옥에 떨어지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돌보기 힘든 환자이기도 했다. 비용을 두 배 이상 지불해도 요양 보호사들이 몇 달을 못 버티고 그만두었다. 돌봄을 전담하던 가족들은 지치고 병들어 갔다. 가뜩이나 쌓여 있던 미움과 증오 위에 돌봄과 사랑을 펼쳐 눕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돌아가시냐고 마음속으로, 때로는 안전한 곳에서 불경한 마음을 내뱉었다.


긴 세월을 함께 보내며 복잡하게 엉키다 못해 끈적거리는 감정을 소화시키려면 어떤 장례식을 치러야 할까 싶어 며칠 동안 장례를 치르냐고 물으니, 반나절이면 끝난다고 했다. 이슬람교 문화권에서는 장례나 제례 문화가 한국만큼 발달하지 않았다. 조상을 섬기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여기기 때문에, 장례를 길게 치르지 않고, 묘지 옆 모스크에서 장례 기도를 올리고 묘지에 안장하는 것으로 끝낸다. 장례지도사의 인도에 따라 장례식 절차를 치르듯, 모스크에 있는 이슬람교 성직자 이맘(Imam)이 장례 기도를 해준다. 죽은 사람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치르지 않고, 에잔(Ezan)에 맞춰 기도를 진행한다. 에잔은 하루에 다섯 번 모스크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알람 소리다. 가끔 에잔이 평소와 다르게 길 때가 있었다. 남편은 그때마다 동네에 누가 죽어서 기도를 올리는 거라고 알려줬다. 동네에서 누가 언제 죽었는지 이맘이 어떻게 알고 한 명씩 호명해 주는 건가 싶었는데, 장례식 기도를 같이 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었다. 


나와 관련 없을 것만 같아서 한 번도 에잔을 주의 깊게 들어 본 적 없었으나, 처음으로 우리를 위한 긴 에잔을 기다렸다. 기도 시간이 가까워지자 일꾼들이 차에서 연두색 알루미늄 재질의 관을 꺼내어 모스크 옆 대리석 테이블에 올렸다. 남자들이 앞에 줄 지어 섰고, 여자들은 스카프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뒤에 멀찍이 섰다. 하얀 모자를 쓴 이맘이 나와서 기도가 어떻게 진행될지 순서를 알려주었고, 내 옆에 서있던 사촌이 내게 이맘이 물으면 우리는 “헬랄 올순Helal Olsun”을 세 번 외친다고 알려주었다. “아무런 거리낌이나 갈등이 없습니다.”라는 의미의 문장으로 죽은 사람의 죄를 모두 용서한다는 뜻이었다. 신께서는 우리가 저지른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하셨지만, 타인에게 저지른 죄는 당사자에게 용서받아야 죄가 사해질 수 있다고 했다. 죽은 사람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을 모두 용서한다고 의미로, 죽은 사람이 신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그 사람을 온전히 보내주겠다는 말이었다. 


이맘의 기도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맘이 한 문장을 내뱉자, 사람들은 “헬랄 올순”을 세 번 외쳤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작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무마저 바람결에 잎사귀를 흔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 고요했다. 기도 소리가 거기 모인 사람들을 이끌어서 떠나는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집착하지도, 너무 미워해서도 안 되는 순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아직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도 “헬랄 올순”을 외치며 신 앞에서 그녀를 용서하겠다고, 가는 길을 축복해 주겠다고 외쳐야 했다. 기도를 마치고 묘지로 걸어가는 가족들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묘지에 도착하자 이미 구청에서 나온 일꾼들이 흙을 다 파두었다. 외삼촌들이 나무판자를 바닥에 평평하게 깔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관을 지고 묘지 가까이에 와서 연두색 관을 열고 하얀 천으로 감싼 시신을 꺼내 그 위에 올렸다. 가까운 사람부터 차례로 비에 젖어 뭉쳐진 단단한 흙을 삽으로 퍼서 시신 위로 덮었다. 옆에서 이맘이 아랍어로 낮게 읊조리는 기도 소리가 마치 노래 같이 들렸다. 짙은 어둠 속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듯 무겁고 습했다. 한참 흙을 덮는 동안, 모두 그녀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생명이 다하고 시신을 땅 속 깊이 묻거나 불에 태우거나 지역에 따라 바다나 산으로 보내어 자연의 형태로 돌아가게 하는 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거리낌을 없애고 흘려보내고 같이 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떠나는 사람이 온전히 갈 수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시외할머니를 잘 모른다. 그저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많은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으며 가시는 날까지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내가 매운 걸 못 먹으니까, 매운 고추 다섯 개를 잘게 잘라서 내 입에 넣고 틀어막았어.”, “자기가 피우던 담배꽁초를 나한테 버리라고 시키고는 내가 그 담배를 피우는지 감시하려고 오빠한테 나를 따라가 보라고 했어.”, “내 입을 억지로 벌리고 음식을 먹이고는 다 씹어 삼킬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게 나를 붙잡았어.” 엄마, 할머니가 학대했던 과거를 가볍게 웃으면서 말해보면 조금이라도 덜 불경할까 싶어 애쓰는 마마와 남편을 지켜보았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그 상처를 치유하고 소화해 내려고 많은 날을 소비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헬랄 올순을 외쳤냐고 물었다. 전날 남편은 침대에 누워서 내게 마음속 깊이, 오랫동안 살아남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자리를 비울 리 없던 적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기분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절대 말하고 싶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외치고 나니 아무 감정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악마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가 한 말들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굴려보았다. 반드시 사랑해야만 애도할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다. 미움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랑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누군가의 죄를 용서하는 오만함이 아니라, 그저 가시는 길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마음이라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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