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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Nov 07. 2021

당신께 받아온 모든 것들을

네 번째 공백


저는 이제야 조금씩 엄마에게 기대고 싶어 지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이제는 엄마에게 덜 의지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으니, 기대고 싶지만 기대면 안 될 것 같은 동요가 끊임없이 일어요.


막 스무 살의 가을이 시작됐을 때, 나는 엄마의 대학 선배셨던 한 교수님과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을의 끝무렵, 교수님께 내 이야기를 담은 메일 하나를 보낸 적이 있다. 이것은 그날의 내가 기록해둔 스무 살 가을의 공백이다. 시간이 흘러도 계속 되뇌는, 나의 긴 공백.



***



교수님은 곧 답을 주셨다.


그대 엄마는 아직도 튼튼하더이다. 걱정 마시길.
여전히 그대가 부모에게는 아이이고, 기대기를 바라며, 아이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어 합니다.


‘이제는 정말 기대지 않아야지’ 수없이 다짐은 해보지만, 다짐은 늘 속으로만 삼켜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에겐 또 다른 것들을 잔뜩 받고 있었다. 그 탓에 줄곧 느껴왔던 죄책감과 부담이,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문장들이었다. 나는 첫 문장을 읽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확신이라는 힘이 담긴 몇 줄의 문장이 나를 가슴 깊이 끌어안아주는 기분이었다. 이 날의 메일이,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에 내가 처음으로 들은 '가족에게 기대어도 괜찮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

내가 당신께 받아온 모든 것들을, 언젠가는 전부 다 돌려드리고 싶어요.

내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어요.

그러니 부디 내 옆에 오래, 건강히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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