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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Jan 21. 2022

한겨울인데 요즘은 봄 냄새가 나더라.

열네 번째 공백

요즘 들어 추위가 한결 더 심해진 것 같다. 밖으로 나가려면 롱 패딩은 필수고, 휴일에는 집 앞 편의점을 가는 데에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밖으로 나오면, 겨울 칼바람을 타고 어쩐지 익숙한 계절의 냄새가 났다. 봄의 냄새였다.



***



당신은 봄이라는 계절을 좋아하나요?


주변에 너는 무슨 계절이 좋아,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계절은 봄이었다. 특히 겨울의 추위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봄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나 보다.

여느 새로운 시작의 설렘도 봄을 닮았고, 봄 특유의 따스함과 화사함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었으니 역시 봄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그래서 계절의 향기가 바뀌는 것이 느껴질 때, 이제 정말 봄이구나 깨달았을 때. 나도 기분이 몽글몽글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늘 끝 맛이 쓰렸다. 좋아서, 따스해서, 마음이 아릿해졌다.

봄 냄새는 꼭 아빠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했으므로.



***



누군가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그 세상에서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게 될까.

내게 봄이라는 계절은  누군가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세상은 무엇도 변하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을 알려준 잔인한 계절이었다.

새로운 인연들은 세상에서 사라진 이의 존재를 알 수 없었으므로, 지어낸 미소에서 습관처럼 새버린 나의 무기력과 서러움 따위를 이해해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내 감정의 이해를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고, 스스로 부정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면 늘 감정과 감정 사이에 텅 빈 공허가 남았다. 그 속에 막연하게 쌓인 그리움을 토할 곳조차 없었다. 나에겐 아빠를 찾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롯이 아빠의 뜻이었다. 우리가 아빠에게 매여 살지 말고, 천천히 당신을 잊으며 산 사람의 삶을 살길 바랬다고.



근데 아빠,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없었어.

아빠의 바람대로 세상은 천천히 아빠의 존재를 잊고, 더 이상 아빠의 삶을 기억해주지 않지만

나는 세상의 어느 곳을 돌아봐도 아빠가 생각 나.

그럴 수밖에 없잖아,

나는 아빠가 이 세상에 살아있었다는 증거 자체니까.


아빠,

나는 아빠의 평생을 알지는 못하지만 아빠와 함께 지나온 계절, 함께 여행한 장소를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할 거야.

봄 냄새가 돌아올 때마다, 여름과 가을, 겨울 냄새가 돌아올 때마다. 떠올리면 아리고 힘들지만, 그 또한 전부 너무 많이 사랑했던 탓이므로.



결국, 언젠가 나는 이 봄 마저 사랑해버릴 것이다. 어쩌면 이미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당신은 봄이라는 계절을 사랑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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