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 21일
죽죽 그어진 획이 문득 끊어진 날
정제되지 않은 문장의 나열에 낱장이 술렁이고
다음 자를 시작할 손끝이 말라버린 날
너의 구절이 세상을 전부 살아갈 수 있도록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빌려줄게
기한은 없어
대신 아주 천천히 오래 쓰고
길고 긴 글의 끝 문장이 다 닳은 뒤에
마침표를 달아 돌려줘
세상에 남은 누군가가 우연히 펼쳤을 때
눌러쓴 마침표 그다음의 첫 문장으로
다시 너를 읽을 수 있도록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네 세상의 기록에 단 한 자라도 좋으니
뜨거운 다정을 지어줄 수 있다면
언제여도 네게 빌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