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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Mar 01. 2022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빌려줄게

13월 21일

죽죽 그어진 획이 문득 끊어진 날

정제되지 않은 문장의 나열에 낱장이 술렁이고

다음 자를 시작할 손끝이 말라버린 날

너의 구절이 세상을 전부 살아갈 수 있도록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빌려줄게

기한은 없어

대신 아주 천천히 오래 쓰고

길고 긴 글의 끝 문장이 다 닳은 뒤에

마침표를 달아 돌려줘

세상에 남은 누군가가 우연히 펼쳤을 때

눌러쓴 마침표 그다음의 첫 문장으로

다시 너를 읽을 수 있도록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네 세상의 기록에 단 한 자라도 좋으니

뜨거운 다정을 지어줄 수 있다면

언제여도 네게 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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