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 27일
누군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책을 한 권 꺼내어 첫 장을 펼치는 것이 시작이고
처음 마주하는 이의 삶을 관조하는 것이 과정이며
이름 모를 이의 생애를 따라,
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그를 이해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종장이자 세상의 결말에 향한다
줄어들고 닳아가는 책의 페이지를 가늠하며
이야기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이제는 이름에 달린 한 줄조차 익숙해진 존재에게
안녕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을수록 한 장과 하루의 무게가 버거워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쉬움과 탈력감이 동시에 나를 적신다
눅눅하게 달라붙은 것이 마지막 페이지라면
이 옅은 물기가 마를 동안만이라도 좋으니,
네 생애를 내가 감히 붙잡을 수 있을까
보내야지, 보내주어야지
너의 세상이 끝을 맞이한 그 순간부터
나의 한 켠에 너의 세상이 새로이 시작되고
우리는 다른 시간을, 다른 차원을
다른 생애를 살아가다가
기어코 이 우주의 첫 페이지에서
꼭, 다시 만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