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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교사 정쌤 Oct 27. 2024

읽는 시간, 쓰는 시간

  <복댕맘>님의 글


 어릴 때부터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인지 나는 자립심이 부족했다. 대학도 어디서 교사하든 같은 일을 하니 내가 사는 지방의 교대에 진학하여 멀어봤자 1시간 거리에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임용 고시에 합격하여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부모님 곁에 있으라는 계시인지 또 집과 멀지 않은 지역에 발령이나 통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딸 사랑이 유난했던 지라 운전면허증이 나오기 전까지 왕복 1시간이 넘는 길을 데려다주고 데려와 주셨다. 아직도 퇴근길 시골 학교 운동장 너머로 아버지 차를 기다리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러다 29살에 2년간 장거리 연애를 하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으로 독립된 가정을 꾸렸어야 했는데 결혼과 동시에 주말부부를 하느라 나는 또다시 친정에 남아 부모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부모님의 도움으로 갓난아이를 키우면서도 대학원 졸업과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1년의 주말부부 끝에 파주로 이사를 오게 된 날, 진짜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출산 직후 가볍게 앓았던 산후 우울증이 휴직하자 걷잡을 수 없이 몰려왔던 것 같다.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때때로 이성을 잃고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남편과 자주 싸우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이를 예뻐하는 마음은 컸지만 나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일의 과중함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모든 일상을 부모님께 의탁하다 혼자 힘으로 하다 보니 한계에 다다랐던 것 같다. 나름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내 이름 석자는 사라지고 누구누구의 엄마만 남았다. 게다가 남편을 따라온 곳이었기에 친구나 지인이라곤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누구보다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이 책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무서워서 닥치는 대로 육아책을 읽었고, 여기저기 호기심 가득한 아이를 달래기 위해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특히 그림책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도 좋았지만 서정적인 글과 모성을 느끼게 하는 말들은 나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다.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냈지만 내일이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책 속에서 찾았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그 시간들은 소위 말하는 경력 단절의 시간이 아니라 충만함을 채우는 시간들이었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지만, 내 삶을 돌아보면 매 순간 책과 함께하지는 못해도 삶의 힘든 순간을 넘을 때마다 책이 옆에 있었던 것 같다. 가늘고 길게 독서하던 내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읽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책이 좋아서, 더 열심히 읽고 싶어서 참여하게 된 독서모임을 통해 약간의 의무감을 가지고 책을 읽다 보니 독서력이 늘었다. 달리는 차에 가속도가 붙듯 ‘코스모스’, ‘총 균쇠’와 같은 벽돌책을 읽고 나면 얇은 책은 손쉽게 읽어진다. 독서모임에선 편독도 불가하다. 매달 추천책을 고르다 보니 각자의 취향과 트렌드가 반영된 책이 선정된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 책을 추천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만큼 내가 가진 독서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 자신감이 없기도 하고, 내가 추천한 책이 별로라는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나서이기도 하다. 함께 읽고 읽는 내용을 서로 공유하는 경험 속에서 조금은 겸손해지는 내가 된다. 책 좀 읽었다는 젠체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내가 모르는 좋은 글들이 많은 것 같아서, 시간이 부족할까 봐 안달 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런 마음을 독서모임이 아니고 혼자서 읽었다면 느낄 수 있었을까? 같이 하기에 얻게 된 값진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 아플 때도 일상이 바쁠 때도 나와 맞지 않는 취향의 책도 사서, 빌려서, 어떻게든 읽어 가려고 노력한다. 그러지 못한 날은 부채감을 가지고 참여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배려 덕에 우리의 독서모임은 온라인으로 이뤄지지만 벌써 3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읽는 시간에서 쓰는 시간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우리 모임 회원들 덕에 또 새로운 도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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