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바란다.
내 글이 나를 옭아매지 않기를 바란다.
내 글이 나를 잘 살아가게 하는 도구이길 바란다.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한 시점이 아팠던 때였다.
마음이 먼저 아팠고 결국 몸도 아팠던 때였다.
나를 위해 살 길을 찾았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글은 나를 살리는 글이었다.
살기 위해 쓴 글이었다.
그때부터 아침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
나를 돌본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일주일에 4-5일 정도 한다.
나를 돌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날마다가 아닌 일주일에 4-5일 정도로
여유를 주며 꾸준히 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지?
내가 쓰는 글은 어떤 글이지?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글인가?
이야기를 하는 글인가?
나는 내가 경험한 것을 쓰고 있다.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그리고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을
써 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나를 돌보는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싶어 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런 것들을 잘 몰랐을 때는
내가 쓰는 글들로 사람을 모으고 싶기도 했다.
블로그를 하면서 이웃이 많아지길 바랐다.
그리고 무엇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를 브랜딩하고 다른 길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내 현실의 아픔을 그렇게라도
벗어나 보고 싶었다.
벗어나고자 쓴 글도 많았다.
그것 또한 일을 하다 시작된
내 아픔에서 치유하고자 쓴 글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았으니까.
3년의 시간동안 글을 쓰며
내가 많이 치유되고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많이 담담해지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내가 아직 쉽게 상처받고 감정에 휘둘린다는 것을.
다만 예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 순간을 빨리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나의 겉은 변해 보이는데 속이 아직 그대로였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잊었다.
내가 아무리 단단해지고 단련이 되어도
내게 주어지는 환경은 모두 제각각이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나라고 하지만
내가 항상 그 환경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만큼 계속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환경은 언제나 변한다.
흔들릴 수 있고 휘둘릴 수 있다.
내 안에 중심을 잡고 있다면
'그럴 수 있어' 하고 넘기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빨간약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서 완전히 변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반숙된 달걀처럼 안은 그대로인 나였다.
이젠 속이 변할 차례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글은 계속 과정 중에 있다.
여전히 나는 치유하고 성장하기 위해 글을 쓴다.
어느 날은 아픔을 치유하고
어느 날은 내 희망을 담는다.
그렇게 한 걸음씩 다지며 나아가는 글이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발견하기도 어렵고
치료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마음의 치유가 그런 듯하다.
다 나은 듯해도 어느 순간 비슷한 자극에
또 아파진다.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기억은 계속 재생되니까.
바꿀 수 있는 것은 흘려보내는 기술이다.
그 감정이 다시 올라왔구나 알아채고
그 감정이 흘러갈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것이다.
잡지 않는다.
'그럴 수 있어.'
그 덕분에 내가 빨리 알아챘잖아.
그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거야.
그 덕분에 나는 무엇이 더 소중한지 알게 되었지.
무엇에 내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지.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었어.
내가 조금 더 유연해지길 바란다.
나에게,
나의 가족들에게,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따뜻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