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괜찮은 부모,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by 쓰는교사 정쌤

아이를 낳고 육아서를 참 많이 읽었다. 마치 '책으로 연애를 배웠어요'처럼 책으로 육아를 배우며 아이를 키웠다. 하지만 책대로 되지 않는 것 중 최고봉이 육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는 책 속의 아이와 다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내가 그 작가와 너무나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같은 문제상황도 문제를 일으킨 변수에 따라 해결방법이 달라지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서를 놓지 않았던 것은 아이 속을 모르는 엄마이기에 조금이라도 아이를 위해 행동하는 괜찮은 부모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갓난아이 시절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하는 지식, 정보가 필요한 게 아니고, 부모 되는 마음가짐, 마인드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육아서가 아닌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안에 담긴 따뜻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어도 소설 속의 할머니를 보며 이런 마음을 가진 부모가 되어야겠구나 생각이 들게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바쁘셔서 항상 낮에는 형제들과 지냈다. 언니, 동생들이 많아서 그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날마다 바쁘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엄마, 아빠는 그리 살갑지는 않았다. 엄마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애쓰면서도 힘들었기에 '오구오구 내 새끼'처럼 우리를 키우지 못했다.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사랑의 방법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도 그 부분이 안 되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너무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이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으로 단호하게 말하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넉넉한 사랑이 부족해 보였다. 아이들이 숙제를 하고, 학원을 다녀올 때도 "했니?, 안 했니?" 하는 질문들을 했다. 육아휴직도 하며 아이들을 위해 나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잘 키우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최선이었나? 하는 아쉬움이 가끔 밀려온다.


『순례주택』의 순례 씨는 기다려주고 보듬어주는 사랑을 실천한다. 죽은 외할아버지의 연인이었던 순례 씨는 그의 손녀인 오수림을 최측근이라 말한다. 내 마음은 순례 주택에서 자랐다는 수림의 말은 순례 씨에 대한 사랑이었다. 수림은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순례 씨에게 듬뿍 받고 햇살 받은 나무처럼 쑥쑥 독립적으로 자랐다.


“오수림”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

가슴이 찌르르했다. 이 넓은 지구에서 나는 어떻게 순례 씨를 만났을까.

『순례주택』- 유은실 지음, 비룡소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소외되고 힘든 아이도 단 한 사람의 충분한 사랑이 있으면 마음이 따뜻하게 자랄 수 있음을 알 것 같았다. 자녀에게 해 줘야 하는 수많은 정보를 담은 육아서는 방법론이다.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랑’이다. 사랑은 방법으로 알려줄 수가 없다. 내 마음으로 온전히 느꼈을 때 그것을 전할 수 있다. 활자로 아무리 아름답게 쓴 들 사랑을 사랑이구나 느끼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소설, 에세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사람과의 관계를 우리가 마음속에 그려보고 그 순간을 재생해 보기 때문에 그때 마음에 전류가 흐르는 감정을 느끼게 되니까. 그 찌르르 내 마음을 건드리는 그것이 사랑이니까.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괜찮은 부모가 되고 싶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괜찮은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 보면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생각에 다다른다. 그럴 때 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들보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본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곳에 사랑을 전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살아 움직이니 그것을 내 마음으로 다 느껴보고 나는 어떻게 사랑을 전하면 좋을지 생각해 봐도 된다.

“순례 씨, 있잖아. 나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태어난 게 기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태어난 게 기쁘니까,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마우니까....”

『순례주택』- 유은실 지음, 비룡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숨쉬기조차 지겨운 날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