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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조차 지겨운 날에는

by 쓰는교사 정쌤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딸에게 주는 레시피』-공지영 지음, 한겨레출판


그 어떤 날과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그냥 툭 나온 말이 "지겨워." 말하고도 나조차 놀랄 때가 있다. 사는 게 힘에 부쳐 하루하루, 겨우겨우 막아오다가 한계에 다다라 댐이 와르르 무너지듯 내 감정의 댐이 무너지기 전에 나오는 소리다. 내 감정조절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아무 때나 나오는 말이 아니다.

그럴 때 나는 응급처치를 한다. 내 마음에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책들을 펼친다. 사는 게 이런 건가 나를 어르고 달래줄 말들을 찾아 나선다. 독서기록 노트에 정리해 놓은 글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 책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 책을 처음 만나 읽을 때 나에게 준 그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걷는 것처럼 살라’는 작가의 말에 안도감을 느꼈다. 힘이 나면 힘이 나는 대로 걷고 힘들면 좀 천천히 걸으면 되는 것처럼 삶도 그 순간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날마다 달리기 하듯 숨이 가쁘게 살지 않아도 되었는데 나는 달리기를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속도를 더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달리고 싶지 않다, 멈추고 싶다, 그만 쉬고 싶다는 마음이 떠올랐다. "지겨워"는 그 순간 툭 튀어나왔다.


잠시 멈춰 내가 선 곳을 바라본다. 현실의 내 자리, 현재의 내 마음, 몸과 마음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알아차리고 나서야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남들의 속도대로 걷지 않아도 조바심을 느끼지 않으리라. 어느 자리에서 내가 만족하는지를 더 잘 알아차리기 위해 걸으면서 더 많이 숨을 들이쉬며 공기의 향을 맡는다. 산들바람이 느껴지는 그 순간, 나에게 딱 맞는 날임을 알아차린다.


그래,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 꼭 달려야 하는 건 아니잖아. 도대체 작가의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에 나오는 ‘행복한 고구마’가 떠올랐다. ‘참, 인삼밭의 행복한 고구마의 마인드로 살기로 했지’ 다시 책을 펼친다.


인삼밭에서 인삼이라고 생각하며 자라는 고구마가 있었다. 고구마는 ‘나는 인삼이구나’ 하며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그걸 본 인삼은 고구마 주제에 인삼도 아니면서 행복해 보이는 게 싫었다. ‘인삼도 아니면서 행복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인삼이었고 그것이 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인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인삼, 고구마의 행복이 자기 몫의 행운을 뺏어간 것이라 생각했다. ‘고구마로 태어났으면서 쉽게 행복하면 안 되는 것이기에 인삼은 고구마에게 진실을 말한다. 그 말을 들은 고구마, “내가 고구마라고?”, “나는 고구마다!”, “나는 고구마~” 인삼밭의 고구마는 행복한 고구마가 되었다.


모두가 ’조금 더‘의 삶을 향해 날마다 달리는 세상에서 산책하듯 걸어도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다 바람을 좀 더 들이마시고 싶어서 달리기도 해 보고 다시 걸어가기도 해 본다. 뭐든 내가 살아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생긴 대로 살아가면서 만족을 느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삼이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는 고구마, 우리는 그런 마음 가짐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성공이라고 말하는 그 무엇들과 대체되는 말들이 아니어도 우리 모두는 개별체로서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숨쉬기조차 지겨운 날은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곳에서 숨을 더 들이쉬어 본다. 숨쉬기조차 무겁게 짓눌리는 날이기에 오히려 더 많은 숨을 들이쉰다. 더 가볍게 살아도 된다고 토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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