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일에 대해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의 목표는 좋은 선생님이었기에 아이들에게 잘하면 다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3월 개학을 하면 학생들을 관찰하고 학생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학년의 경우에는 학생의 문제행동이 관찰되면 친구들 사이에서 낙인효과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제행동을 고쳐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학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었다. 교실에서 보이는 학생의 문제행동은 물 위에 뜬 빙하일 뿐이라는 것을 잊은 것이다. 문제행동은 다른 요인의 결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천천히, 더 많이, 더 오랜 시간 관찰해야 한다. 처음에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바라봐 주는 무던함이 필요하다.
내가 그해 만난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모두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교사는 그 학생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존재이지, 학생의 모든 문제행동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변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변화는 학생 안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 안의 변화를 위해 교사, 학부모 때론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나의 욕심이 앞섰을 때, 학생의 문제행동에 대해 잘못된 대처를 했다. 학생을 위해 내가 더 노력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바다 아래 가라앉은 빙하를 보지 못한 행동이었기에 의도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무엇이든 옳다고 믿으면 직진했던 나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하는 행동이 옳다는 것을 너무나 강력하게 전제하고 행동했다. 책을 읽고 나서야 거기에서 조금 더 시간을 들이고, 더 의견을 들어보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해 학생들을 만나서야 문제행동을 가진 학생들에 대한 시선을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조금 더 멀리 조망하며 바라본다. 저 아이도 자라고 있다, 저 아이도 자라느라 애쓰고 있다, 저 아이에겐 스스로 자라는 힘이 있다, 시간은 참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아이의 성향을 인정해 주자, 나에게 무엇이든 시간을 두고 더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렇게 아이들을 마주하니 문제행동을 가진 학생들에게 빨리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 오히려 ‘너도 크느라 애쓰는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 더 많다. 이런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듯 아이는 문제행동을 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나에게 와서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 집에서 부모님과 나눈 이야기들을 전하며 웃는다. 그러면 나는 나에게 ‘오늘도 잘 기다렸어.’ 조용히 응원을 보낸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갈등이 싹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라고 말한다. 나는 삶의 순간순간 불안함이 올라오거나 논쟁해야 할 때나, 자녀를 위한 내려놓음이 필요할 때 이 주문을 외운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박미경 옮김, 다산초당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가 아닌 남들을 통제하지 않게 한다. 굳이 통제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자랄 것이라고 안도시켜준다. 여전히 나에게 이 주문이 필요한 순간이 너무 많다. 더 겸손하게, 나를 받아들이며 살기 위해 무엇인가에 기필코를 붙이려고 할 때마다 주문을 외운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틀려도 괜찮다고 다독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