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리, 나무의 생장점처럼 나의 한계를 밀어내며

by 쓰는교사 정쌤

필사 노트를 보다가 지난여름에 읽은 [딸에 대하여]에 나온 글귀들을 다시 읽었다. 인상적인 글귀들만 필사해 놓았는데 그 책을 읽을 때의 느낌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아려왔다. 요양보호사 엄마가 대학 시간강사인 딸의 동성연애를 보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과 이야기들이 나온다.


남들의 이야기로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내 자식 일이 되면 누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소설은 그 부분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마치 내가 엄마가 된 듯 가슴을 후벼 파며 읽었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을.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 무엇이든 경험하지 않고 말로만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딸에 대하여]- 김혜진 지음, 민음사



필사한 글귀를 읽으며 아침에 일어나 차 한 잔 마시며 저널을 쓰다가 생각한 것들이 떠올랐다. 내가 이 삶을 잘 산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충분히 쓰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으면서 나의 사랑을 충분히 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로 인해 세상에 온 나의 자녀에게 엄마가 너를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네가 충분히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느끼게 해 주고 싶다. 나만 알고 느끼고 끝나서는 안 된다. 사랑은 전해져야 완성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조금 더 많이 표현하며 엄마의 사랑을 조금 더 느끼도록 애쓰려고 한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확신은 세상을 살아나갈 에너지이고 재산이기 때문이다.


엄마로 살아가는 일은 익숙해졌다 싶으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과업의 문을 열어준다. 아이의 키와 마음이 한 뼘 자랄 때마다 나의 인내와 지혜도 그만큼 더 쪼개지고 불어나야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그 치열한 변화의 지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마치 식물이 하늘을 향해 몸을 밀어 올리는 '생장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의 가장 끝단에서 가장 여리지만 가장 격렬하게 세포를 나누는 생장점처럼, 나 또한 아이라는 빛을 따라 매일 나의 한계를 밀어내며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높은 온도에서 식물의 생장이 더딘 것처럼 자녀에게 주는 사랑도 과하지 않길 바란다. 아이의 생장에 필요한 적당한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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