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6월 16일 ~ 22일
매일 글을 쓰다 보면, 1분 안에 후다닥 써야하는 날도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책상 앞에 앉을 수 없었던 날. 누가 포도를 씻겨주고 재워주기만 해도 얼마나 좋을까. 야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맡기자니 너무 미안하다. 내가 해야겠다. 이러려고 전업주부하는 거니깐.
시간을 억척스럽게, 고집스럽게 만들어내지 못하면 절대 글을 쓸 수 없다. 절실하게 느낀 하루다.
<대차게매일글쓰기>
놓지 않으면 된다
“와, 우리 포도. 먹는 거 보니깐 쑥쑥 크겠는데?”
신김치, 김. 아침 반찬이 둘뿐인데도 걱실걱실 꿀떡꿀떡 먹어대는 모습이 기특했다.
“엄마, 그러면 나 하루아침에 어른 되는 거야?”
포도는 김 위에 밥과 김치를 야무지게 올리며 말했다. 나는 그만 정색했다.
“밥 한 끼 잘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야. 삼시세끼 꼬박꼬박 성실하게 먹어야 어른이 될 수 있어.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세상에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어. 시간이 걸려. 그 시간을 잘 견뎌내야 해.”
아이고. 이 애미 좀 보소. 어디서 훈계질이야. 그냥 이렇게 말해도 됐을 일이었다.
“맞아. 하루아침에 어른 돼서 엄마랑 커피 한잔하자!”
나는 포도에게 쓸데없이 퍼부었다. 착각하지 마. 거저 되는 건 없어. 시간이 필요해. 인내심을 가져야 해. 네가 원하는 일은 다 어려울 거야. 세상살이가 원래 그래. 포도는 우물우물 씹으며 싱긋 웃었다.
“엄마, 하루아침에 되는 일도 많아. 헐랭이(포도의 애착 인형)도 하루아침에 마르고, 드로캅도 하루아침에 변신할 수 있어. 딸기잼도 하루아침이면 다 만들잖아.”
맞다. 포도의 말이 맞다. 세상에는 하루아침에 수월하게 되는 일이 많다.
내가 삶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골치 아프고 힘들어야 제대로 사는 거라고 잘못 믿어온 건 아닐까.
이사할 아파트 잔금일이 가까워질수록 어깨가 뻐근해진다. 주식에 묶인 돈을 덜 손해 보고 정리하려고 며칠을 끙끙댄 탓이겠지. 아파트 매수와 이사를 몇 번이나 더 해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까. 결혼 생활 14년, 벌써 다섯 번째 이사다. 돈이 많으면 이 모든 게 조금은 쉬워질까.
돈은 하루아침에 벌 수 없지만, 어른도 하루아침에 될 수 없지만, 어른의 마음가짐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 손해로 쪼그라든 마음을 활짝 펴자. 내 인생을 크게 놓고 보면 이 정도 손해는 손해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잘될 거다.
“매일 글 쓰는 거 보니깐 포도처럼 쑥쑥 크겠는데?”
<대차게해봄>
하루아침에 무한 긍정
“좋았겠다. 엄마도 체리 농장에 가고 싶어.”
포도는 체리 농장에 체험 학습을 다녀왔다. 내가 어릴 적엔 없던 농장 체험, 부러웠다.
“설마, 체험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지?”
남편이 내게 물었다.
“응? 나도 체험하고 싶은데?”
나는 남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야. 지금 돈 내고 체험할 때냐? 일당을 받아와야지. 일해서 일당 받아 올 생각을 해야지.”
남편은 킥킥킥 웃으며 검붉게 잘 익은 체리를 먹었다. 나는 체리를 씹다가 씨앗을 홱 뱉었다. 욕도 하나, 같이 뱉을 뻔했다.
맞다. 체험, 모험 같은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일해서 일당을 받아야 한다. 일, 일당, 월급, 내 밥벌이. 한때는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무시무시한 모험이 되었다. 모험을 하는데 제일 큰 걸림돌은 나의 마음이다. 포도를 하루 종일 유치원에 맡겨놓으면서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문제다. 그러느니 안 벌고 말지, 안 쓰고 말지. 돈이 아주 아쉽지는 않은가 보다. 그래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대차게해봄>
체험, 모험, 육아까지
무엇이든
비가 많이 온다는 안전 안내 문자를 세 번이나 받았는데도 김을 재고야 말았다. 장을 못 봐서 딱히 요리할 재료가 없었다. 시판 조미김은 눅눅해지면 기름내 때문에 먹기 거북하지만, 집에서 만든 조미김은 아무리 눅눅해져도 먹을 만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어릴 적 우리 집 부엌 찬장에는 엄마가 구운 조미김이 항상 넉넉하게 있었다. 간식으로 먹고, 반찬으로 먹고, 다른 반찬과 곁들여 먹기도 했다. 너무 흔해서 반찬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조미김은 존재감 없이 밥상 한편을 지켰다.
그 존재감 없던 김을 재다가 포도 하원 시간에 늦을 뻔했다. 엄마는 할아버지 똥오줌을 받아내고 밤 깎는 부업도 하면서 매일 한 상 가득 저녁밥을 차려줬는데, 나는 도대체 뭘 하길래 바빠서 이렇게 허둥지둥 대는 걸까.
“오늘 김 새로 구웠네. 포도야, 이게 진정한 밥도둑이야.”
남편은 김에 손만 대고도 금세 알아챘다. 반들반들 바삭한 촉감에서 이미 산뜻한 감칠맛이 느껴지니깐. 요즘 내가 국이며 반찬이며 워낙에 새로 만들지 못해서, 우리 집에서는 조미김의 존재감이 그야말로 충분했다.
엄마는 어찌 그리 조미김을 찹찹하게 쟁여두며 살았을까. 나도 엄마처럼 찹찹하게 부지런히 살고 싶다. 저녁이면 늘 다짐하지만, 또 이렇게 다짐한다. 내일은 조금 더 잘 살아야지.
<대차게해봄>
찹찹하게
부지런히
포도의 다섯 번째 생일날. 저녁 메뉴는 내 손으로 만든 미역국과 계란말이였다. 내 입에 안성맞춤이라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세 그릇이나 먹었다. 밥에 취해 바로 잠들었다.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오늘이 남아 있었다. 오늘 안에 단 몇 줄이라도 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게는 이게 최고다. 하루도 빠짐없이 뭐라도 쓸 수 있는 삶, 럭키비키다.
깜깜한 밤 안에 개구리 우는 소리가 가득하다. 이 소리를 들으며 포도를 끌어안고 더 잘 수 있어서 럭키비키다. 다시 자야겠다.
<대차게해봄>
포도 생일 기념
밥 많이 먹고
잠 많이 잔 날
3년 연속, 오늘도, 팔봉산 감자 축제에 다녀왔다. 외지인에게 추천하기가 민망한 짜다리 별거 없는 동네잔치다. 볼거리와 놀거리는 아예 없다. 대신 먹을거리와 선물거리가 있다. 그게 전부이고, 그게 전부라서 좋다.
어르신이 운영하는 팔봉면남녀새마을협의회 노점 식당은 올해도 대박이었다. 은은하게 짭짤하면서 감자의 달큼함이 살아있는 감자전, 멸치 향이 싱그럽게 올라오는 따뜻한 국수, 쫄깃쫄깃한데도 부드러운 수육은 그 비법을 묻게 했다. 아침에 막 버무린 김치와 무말랭이는 고급 한정식 수준이었다. 감자떡은 달지 않아서 더 좋았다. 한 접시만 주문한 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추가하자니 대기 줄이 너무 길었다. 옆자리 아주머니가 한 잔 나누어주신 지곡팔봉 막걸리는 목구멍에 쫙쫙 붙었다. 포도가 없었으면 병나발로 빠라삐리뽀 했을 거다. 낮술 한잔 걸쳐도 되는 날이었지만, 애미 체면을 차렸다.
“시골 인심이 참 좋아. 김치랑 국수가 끝내주네요.”
그 아주머니가 김치를 더 갖고 오시며 내게 말했다.
“저희는 3년째예요. 팔봉면남녀새마을협의회, 여기가 맛있어요.”
옆 테이블에는 감자떡이 없길래 슬쩍 드렸다.
“감자떡도 희한하게 맛있네. 저기서 떡볶이를 샀는데 떡볶이는 영 맛이 없어.”
나는 1년에 딱 한 번만 누릴 수 있는 이 점심을 위해 매년 이 축제에 오는지도 모른다. 우리 고장 최고의 외식이었다.
그리고 팔봉산 감자 축제에 오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매년 어김없이 장화 신고 우비 입고 많이 걸어야 하며 주차까지 힘든 여기에 오는 이유는 바로 양가 부모님과 형님, 언니에게 팔봉산 감자 10kg을 택배로 보내기 위해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감자는 바로 팔봉산 감자다(이 연사, 강력하게 외친다). 서해 바닷바람을 맞으며 황토에서 자라 감칠맛이 나고 쫀쫀하며 포슬포슬해서 귀여울 정도다. 산지 맛을 알아버린 사람은 안다. 하늘과 바람과 땅이 살아있는 그 타이밍을. 그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그 맛을.
10kg 다섯 박스를 사고 택배를 신청한 후 차에 오르자마자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이제 우리 현금 하나도 없지?”
“없어. 아까 너랑 내 지갑까지 다 털었어. 차에 있던 오백 원짜리 두 개도 썼다니깐.”
남편은 신났다. 깔깔깔 거렸다.
“내가 진짜. 이번처럼 돈을 싹 다 끌어다 쓴 적이 없었는데. 이제 집에 비상금도 없어.”
그리고 나는 순간, 외쳤다.
“돼지저금통!”
다행이다. 저금통의 동전은 건들지 않았다. 이제 남은 현금은 동전 몇 닢이 전부였다. 바로 어제, 최대한의 대출과 다 끌어모은 현금으로 이사 갈 집의 잔금을 치렀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 상황이 재밌었다. 여러 번의 매수로 ‘내성’이 생긴 탓이겠지. 돈은 숫자고 심리다. 숫자가 줄어든다고 해서 마음까지 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단단해졌다.
그때 포도가 말했다.
“엄마, 나 돈 필요해.”
“너는 얼마나 필요한데?”
“천만 원.”
만 다섯 살의 입에서 툭, 천만 원이 튀어나왔다. 남편이 탄성을 질렀다.
“우리 포도, 멋지다. 스케일 좀 봐. 쟤는 클라스가 달라.”
최근 남편이 이렇게 행복해 보였던 적이 있었을까. 차 안이 흔들릴 정도로 마음 놓고 웃어댔다. 마음이 푹 놓였다.
축제에서 플렉스하고 동전 몇 닢만 남은 우리, 그런데도 풍족하다. 돈이 훨씬 없었던 시절에도 잘만 살았다. 이제는 천만 원이 기본 단위인 포도까지 함께 있으니, 삼시세끼 감자만 먹어도 든든하겠다. 곧 도착할 감자와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뿌듯하다. 모두가 살아 있고 건강해서, 은혜로운 밤이다.
새 대출을 실행할 때마다 울적했는데 오늘은 즐거웠다.
앞으로 나에게는 유쾌한 날이 더 많을 것이다.
<대차게해봄>
어쩌면 미쳤을까
미치면 미친다는데
미쳐도 좋겠다
의식주.
‘의식주’라는 말이 있다. ‘의식주’라는 말을 왜 많이 쓰는지 이제야 알겠다(왜 이제야...) 의식주는 내 삶의 기본이고, 특히 읽기와 쓰기의 질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작년 이맘때 나는 문장에 취해 살았다.
“요즘 부동산에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삶이 너무 쉬워.”
언니에게 이런 말까지 떠들었다. 이사를 앞둔 지금은, 다르다. 욕실 타일이 툭, 또 툭. 더 떨어질까, 떨어진 것만 셀프로 붙일까, 업자를 부를까, 그럼 돈이 얼마나 들까. 이 생각이 한 페이지를 다 먹어 치운다. 에세이고 소설이고 나발이고, 책을 읽다가
“아이고, 작가님. 그대는 팔자가 참 좋수.”
이런 소리만 튀어나온다.
의식주 중에서도 ‘주’는 제일 큰 놈이고 제일 비싼 놈이자, ‘의’과 ‘식’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내게 집은 읽기와 쓰기의 의자이다. 집이 흔들리니 엉덩이와 등을 도저히 붙일 수가 없다. 욕실 타일이 후두두 떨어지면 책상에서 당장 일어나야만 한다. 읽기와 쓰기를 내팽개쳐야만 한다.
이사 갈 집에 집중해야겠다. 집이 안정되면, 다시 말랑한 에세이가 편안해질 거다. 집이 안정되면, 읽기와 쓰기가 풍요로워질 거다. 그 풍요로움을 위해 이번 집에는 최소 3년, 최소 3년은 자리를 잡고 살아야겠다. 그럼, 도배를 해? 말어? 그럴 돈은 있나?
<대차게해봄>
셀프 인테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