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6월 9일 ~ 15일
카카오 주식이 20.77%나 올랐던 날. 그런데도 현재 주식 계좌 총 수익률은 –46.28%였다. 가뭄 끝에 단비가 왔는데, 내 장독대는 금 가 있었다. 도배도 못하고 이사 가야 하는 판국이 과연 바뀔 수 있을까.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카카오가 올라서 좋았지만, 수익률을 보니 우울하고, 물타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찌할 바를 몰라 어지러웠다. 물타기의 정확한 뜻도 모르는 주린이라 더 판단을 못 내렸다.
물 대신 숨을 탔다. 숨타기. 호흡을 고르고 하루를 마감하며 적는다. 주식은 모르지만 아는 게 있다. 마음이 요동칠수록 문장을 세워야 마음이 바로 선다.
<주식은 오지게 모름>
대차게 아는 건 뭐?
매일 글쓰기?
유치원에서 MBTI 관련 보호자 연수를 받았다. 내 시간을 환불받고 싶었다. 강의 수준이 너무 별로라서, 내가 이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제가 이 강사님의 강의를 3번이나 들었는데요. 들을 때마다 감동적이라 또 모셨습니다.”
원장님의 강사 소개는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 없다.
강사는 “MBTI는 원래 4주 과정인데 2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말이 빠르거나 설명이 부족해도 이해해달라.”는 말을 스무 번 이상 반복했다. 강의 시간이 2시간이라는 건 한 달 전부터 공지되었는데, 본인이 강의 시간에 맞게 내용을 준비하지 못한 걸 어째서 저렇게 반복하며 양해를 구하는 걸까. 쓸데없는 말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까먹는 고도의 작전 같았다. MBTI의 유형별 특징을 시각 자료 전혀 없이 말로만 다다다 설명했고, 반대 유형끼리는 서로 보완하면서 살란다. 요즘 그 정도 내용은 지나가는 개도 안다고. 차라리 유튜브가 낫지. 강의장을 준비하신 선생님, 자리를 채운 30명의 보호자, ‘MBTI, 우리 아이의 기질을 알았어요.’ 라는 멋들어진 현수막 2개, 이 강의을 위해 쓴 모든 에너지, 시간, 돈이 아까웠다. 강의 내용과 전혀 딴판인 현수막 제작으로 환경 오염까지 시켰다.
강사의 몹쓸 말이 내 마음을 긁었다.
“초임 교사가 애들을 잘 가르치고 열성적이죠.”
그럼, 경력 교사는 못 가르치고 무기력하다는 뜻인가.
“어깨 위로는 때리지 마세요.”
그 아래는 괜찮다고?
“여기는 바람피워 본 사람이 없나 봐요.”
아무리 예시를 들어도 그렇지, 배우자의 바람 때문에 이혼한 가정을 얘기해야만 했을까.
우울하다. 우리 고장은 수도권과 워낙 멀어서, 인근에 멀쩡한 대학교가 없어서 강사를 섭외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유치원에는 훌륭한 강사님이 오시겠지. 열악한 교육 환경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여기 살고 있는 내 잘못이다. 슬프다.
연수 만족도 설문조사에 ‘매우 아니다’를 체크하고 그 이유를 대강 작성했더니 담당 선생님께 메시지가 왔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란다. 내일 나와 전화 통화를 하고 싶단다. 아, 귀찮귀찮귀찮아. 괜히 악플을 달았나.
귀찮아도 구체적으로 말해야겠다. 내가 말해야 이런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는다. 강사의 밥벌이가 걱정되지만, 그 강사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집합 교육의 장점을 살려달라고, 그런 강의를 제대로 준비하라고! 좀!
전업주부 주제에 남의 강의 평가나 찍찍하다니. 돈 못 버는 나보다 이렇게라도 강의해서 돈 버는 사람이 위너가 아닐까.
<지버릇 대차게 개못줌>
HRD 전공해봄
기업 및 공공기관 교육팀에서 근무해봄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은 지금 잘하지 못하는 일이다. 잘하고 싶은 일을 잘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못하는 나를 지켜보며 견뎌야 한다. 그 시간은 괴롭다.
어느 날 문득 조금이라도 잘 해낸 것 같은 순간이 온다. 느닷없이 온다. 기분이 참 좋다. 오래 유지된다. 이게 행복이다.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을 정말 잘하고 싶다. 이런 욕심은 내도 된다. 내 삶의 원동력이다.
<대차게해봄>
더 해보자
잘 해보자
“엄마, 사과가 그러던데. 오늘 아침에 내가 만든 딸기잼 먹었대. 맛있었대.”
하원하자마자 포도가 신나게 말했다. 어제 포도의 단짝 친구 사과 엄마에게 딸기잼 한 병을 살포시 나눠줬는데 맛있었나 보다. 내 딸 포도, 포도의 단짝 친구 사과 그리고 딸기잼. 저절로 입가가 달콤해진다.
세상에 맛없는 잼이 있을까. 집에서 만든 잼은 덜 달아서 더 깊다. 처음으로 사용해 보는 히말라야 핑크 솔트를 과하게 넣는 바람에 살짝 짭쪼름한 맛이 났지만, 그 짭쪼름함이 딸기의 향을 밀어 올렸다. 묘하게 고급스러웠다.
포도가 잼을 소복이 퍼서 요거트에 올려 먹는 폼을 보니, 이번 주말에도 만들어야겠다. 노지 딸기는 이번 주가 진짜 마지막이다. 제철의 끝을 단단히 잡아 병에 쟁여둬야지.
< 짭쪼름하고 고급스러운 딸기잼 레시피 >
- 딸기 2.5kg
- 초록마을 그냥 설탕 600g
- 히말라야 핑크 솔트 15g (다음에는 10g 정도만 넣자!)
- 유로푸드 레몬즙 100g-
- 쿠쿠 멀티쿠커 사용
- ‘찜’ 모드에서 40분 이후 뚜껑을 연 채로 94도에서 대략 6시간 정도 끓임
900ml 남았을 때 ‘볶음’ 모드에서 10분 동안 저어가며 바글바글 끓임
- 딸기잼 800ml 완성!
<대차게제철음식>
내일은 매실청
+
굳이 이렇게 딸기를 으깨지 않아도 되지만,
포도가 이렇게라도 해야한다.
그래야 포도가 만든 딸기잼이 된다.
포도는 '이마에서 나오는 별의 마법'으로 딸기를 으깼다.
별의 마법이 뭔지는 이 애미가 모리겠다.
“어머님, 혹시 도시락 때문에 그러시나요?”
포도의 유치원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여름방학 돌봄 교실을 신청하지 않아서 확인차 전화하셨단다.
“꼭 도시락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집에서 쉬려고요.”
이유를 줄줄이 설명할 수 없었다. 급식 대신 먹어야 하는 일회용 용기에 담긴 도시락은 질색이다. 일하기 싫은 티가 팍팍 나는 돌봄 강사님은 싫고, 열사병에 걸린다는 이유로 바깥 놀이를 일절 하지 않는 것은 어이가 없으며, 교육이랍시고 자주 틀어주는 동영상도 마뜩잖다.
“선생님, 돌봄 교실을 신청하지 않은 아이들은 몇 명이나 되나요?”
“정원 123명 중 포도 뿐이에요.”
이 얘기를 듣자마자 ‘별나게 굴지 말고 보낼까.’ 하며 살짝 흔들렸다.
“선생님, 그럼 개별 도시락을 지참하겠다는 아이들은 몇 명이나 되나요?”
“한 명뿐이라서요. 모두 업체 도시락을 먹어야 해요.”
혹시라도 포도에게 점심 도시락을 싸줄 수 있다면 보낼까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개별 도시락 희망 인원이 20% 미만일 경우에는 무조건 외부 업체 위탁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유치원의 운영 방침이다.
다른 집 엄마들은 모두 바쁘겠지. 도시락을 싸줄 여유가 없나 보다. 어쩌면 공짜 도시락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공짜를 마다할 이유가 있나. 나도 공짜 좋아한다. 엄청나게 좋아한다. 하지만 아무리 공짜 도시락이라도 매일 포도에게 ‘본 도시락(편의점 도시락과 비슷함)’을 먹이고 싶지 않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지금만큼은, 조금이라도 덜 먹게 해주고 싶다. 완전히 피하고 싶다.
이렇게 별나 빠진 포도 엄마는 오늘 처음으로 매실청을 담갔다.
“포도가 이거 냄새 맡아봐. 진짜 좋지?”
“엄마, 복숭아 향기가 나.”
청매실을 쪼갤 때마다 달큼하고 싱그러운 향기가 퍼졌다. 그 향기에 설탕을 넣고 버무렸으니 얼마나 맛이 좋을까. 백일쯤 지나면 맛있고 일 년을 넘기면 최상의 맛이라지. 진작 내 손으로 만들 걸. 만드는 맛이 좋았다. 기다리는 맛도 좋을 것이다.
<대차게해봄>
돌봄도
매실청도
세상이 잠든 새벽
먼저 깬다.
호화로운 시간
책을 읽으며 사치를 부린다.
밥벌이와는 무관하지.
문장 하나를 기어코 찾아내 단단히 붙들어맨다.
창문을 활짝
새잎의 싱그러움을 집안에 들인다.
팬티와 양말을 반듯이 접고
대파를 송송
계란말이를 통통하게 굴린다.
문장을 붙들수록
살림이 숨을 쉰다.
그리고
음미.
옷가지가 제자리를 찾고
밥상이 차려지면
해석이 쌓인다.
<대차게음미>
내 하루를
내 삶을
‘꾸준함’이란 1년 365일 매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정성껏 하는 것이라 믿었다. 나는 매일 완벽하게 열심히 해야 꾸준한 거라고 생각했다. 평생 꾸준한 적 없었던 내가 싫었고 부끄러웠다. 이렇게밖에 못 사는 이유는 꾸준하지 못해서라고 확신했다.
오늘 나도 모르게 말했다.
“요즘 대강 읽고 대강 써요. 이럴 때도 있는 거죠. 다시 치열해질 거예요. 아마도 곧 그럴 거예요.”
최근에는 새벽 4시 이전에 일어나본 적이 없다. 5시 20분쯤 간신히 일어났다. 책을 몰입해서 읽지 못했고 기계적으로 꾸역꾸역 읽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내려놓지는 않았다. 깊이 생각한 후 쓰지 못했고(누가 읽으면 예전에는 생각한 후 쓴 줄 알겠다) 막 써 내려간 적이 많았다. 그래도 쓰긴 썼다. 완벽하게 잘하지 못했지만, 놓치지 않았다.
‘꾸준함’을 새롭게 정의하는 건 어떨까.
< 꾸준함 = 놓지 않음 >
나는 1년 365일 완벽하게 열심히 할 수 없다. 이런 사람도 있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달성하지 못하는 꾸준함의 기준을 세워두고 못 하는 나를 혼내봤자 남는 건 좌절뿐이었다. 남은 생마저도 나를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며 살 수 없다. 나를 위해서 ‘꾸준함’의 기준을 바꾼다. 꾸준함이란 어떤 일을 매일 정성껏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냥 하는 것이다. 1년 365일의 10% 정도는 안 해도 된다. 놓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면 꾸준한 거다.
나는 꾸준한 사람이다. 꾸준히 일찍 일어나고 꾸준히 읽고 꾸준히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 거다. 이 정도 살면 됐지, 뭘 더 바라. 자꾸 욕심낼래? 결혼할 때만 해도 순자산 마이너스 팔천만 원에 에어컨도 없었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와우, 성공했다, 성공했어. 에어컨이 2대요, 거기다 제습기에 건조기에 식세기에 멀쩡한 노트북이 3대나 있다. 부자네, 부자.
나는 꾸준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
<대차게해봄>
결국 자화자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