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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소란, 잔잔한 역동

25년 5월 26일 ~ 6월 1일

by 대차게해봄

25년 5월 26일 월요일 / 주문을 외운다


자꾸만 아빠가 생각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감을 때, 눈썹을 그릴 때, 도서관 의자에 앉자마자, 그림책 수업이 끝나자마자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에, 영상 편집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도, 포도가 저녁밥을 건너뛴 채 잠들어버린 지금도, 자꾸만, 자꾸만. 어제 아빠는 잠을 설쳐서 기운이 없다고 했다. 오늘 아빠는 포도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애써 환하게 웃었다. 슬픔이 똑똑똑. 안 돼, 출입 금지야. 부르르, 고개를 떨며 슬픈 상상을 떨친다. 주문을 외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말한다. 감사합니다. 누가 보면 정신 나간 줄 알겠지. 감사합니다. 아빠 정도면 행복하게 잘 살았다. 감사합니다. 내가 아빠만큼만 살아도, 와우, 럭키비키야. 감사합니다. 슬픔이 지나간다. 반 팔십 살이 넘은 어른이 하루 종일 아빠 생각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 다시, 주문을 외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차게해봄>

내일부터는 아빠 이야기도 좀 그만 쓰자.




25년 5월 27일 화요일 / 조용한 소란, 잔잔한 역동


영상편집 강의 시간, 엄마 또래의 여성분이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쉬는 시간에 말을 거셨다.


“유튜브 하려고 이거 배우세요?”

- 네. 저는 오디오 에세이 하고 싶어요.

내 입에서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런 말이 나왔다. 아무래도 나, 정말 할란가 보다.

“책 읽어주는 여자, 그런 거?”

- 아니요. 다른 사람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제가 직접 쓴 글을 낭독하려고요. 오디오북처럼요.

나도 참 웃기지. 그냥 “네.” 하면 될 걸 “아니요.” 하면서 친하지도 않은 분께 나의 계획을 우렁차게 발표했다. 내 뒷자리에 계신 분들도 내 말을 듣는 듯했다. 하도 우렁차서 큰 북이라도 두드리는 줄 아셨을 거다.

“어머, 글을 써요? 주로 어떤 내용이에요? 소재가 뭐예요?”

- 전업주부의 기쁨과 슬픔이요.

나는 반사적으로 탁탁 대답했다. 누군가 내 글에 관해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 그럼 굉장히 조용하고 잔잔한 글이겠네.”


아니요, 라는 얘기를 하려다 굳이, 뭐 하러, 가만히 있었다. 전업주부의 글은 조용하고 잔잔해야 하구나. 내 삶이 조용하고 잔잔하다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하긴, 산업역군인 남편보다, 워킹맘보다, 활동 반경이 좁고 만나는 사람의 수가 적어서 조용하고 잔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삶은, 내 글은, 어떨까. 절대 조용하고 잔잔하지 않다. 그렇다고 소란스럽고 역동적이지도 않지만.


‘조용하고 잔잔한 삶, 조용하고 잔잔한 글’은 좋은 거다. 그런 삶을 살 수만 있다면, 그런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과연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마냥 평화로울 것만 같은 수녀님조차도 수녀님만의 기복이 있지 않을까. 조용하고 잔잔한 글이 있다고 해도 그 글을 쓰는 사람은 절대 조용하고 잔잔하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건 본질적으로 소란스러운 짓이니까. 그 일을 꽉 붙잡아 탈탈 털어 활자로 박아두는 과정이니까. 아오, 시끄러워. 거기다 고치고, 사전을 뒤지고, 다시 쓰고 고치는 과정은 얼마나 역동적인가. 백스페이스를 때리는 저 가운뎃손가락 좀 보소. 새끼손가락으로 살살해서는 지우는 맛이 안 난다. 가운뎃손가락을 쓸 수밖에.


조용한 소란, 잔잔한 역동.

내 삶과 내 글은 이런 것 같다.


<전부다해봄>

조용하고 소란스럽고

잔잔하고 역동적이기까지




25년 5월 28일 수요일 / 포도를 만나기 20분 전


영상 편집 강의가 끝나자마자 포도의 유치원 바로 앞 카페에 왔다. 포도는 딱 50분 뒤에 하원한다. 오늘 내게 남은 자유시간은 50분. 그림책 문해력 지도사 자격증을 딴 후기를 쓰려고 했는데, 아니다. 아무래도 그 글은 다음 주 월요일에 강의실이 위치한 도서관에 가서 쓰는 게 좋겠다. 그래야 감정이 잘 잡힐 것 같다. 나는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깊이 와닿는다. 아빠 덕분이다. 건강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을 잃으면 행복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거다. 아니다. 아픈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 아픈 사람도 행복할 수 있겠지? 내가 행복하니깐 아빠도 오늘 행복할 거다. 나와 아빠는 연결되어 있다.


요즘 건강을 위해서 커피를 하루에 딱 두 잔만 마시고 있다. 석 잔이 아닌 게 어디야. 이틀 연속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내가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달고 산다는 건 내 생활에 지독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주 일요일부터 매일 새벽기도를 하기로 했지만, 안 하고 있다. 새벽 3시 50분에 벌떡 일어나서는 기도와 대치한다. 절 방석과 신경전을 벌인다. 절 방석은 어서 와 허리를 숙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응하지 않는다.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며 책상 앞에 앉는다.


새벽기도를 하면 좋은데. 내가 3년 해봐서 안다. 미움과 원망, 두려움과 불안이 내게 상흔을 남기지 않고 고요하게 지나가 버린다. 감사함만 남는다. 그러나, 진심으로 하기 싫다. 간절하게 하고 싶지만, 죽도록 하기 싫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이렇게 모순적인 일이 또 있을까. 간절하게 하고 싶지만, 죽도록 하기 싫은 일 중에 새벽기도 말고 다른 무엇이 있을까.


내일 새벽에는 할 수 있을까. 내일 새벽에는 108배를 할 수 있을까. 내일 만일 새벽기도를 한다면 라면과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지 않을 것이다. 또 못 한다면, 내일도 또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만 같다. 어차피 먹으려고 산 거, 먹어 치워버려야지 뭐.


포도를 만나기 20분 전. 책<아티스트 웨이>를 읽어야지. 밑줄 친 부분만 다시 읽어야겠다.


<대차게해봄>

간절하게 하고 싶지만

죽도록 하기 싫은 일

내일은 할 수 있을까




25년 5월 29일 목요일 / 이재명 당선 후


포도를 재우고 책상에 앉았다.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책상에 앉은 것이 틀림없다. 반 통이나 먹어댔다.

<자기야,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남편에게 이렇게 카톡 했을 뿐인데, 아이스크림을 무려 여섯 통이나 사왔다. 그 때는 남편이 러블리하고 스윗했다. 내가 사달라는 걸 군소리 없이 척척 사주는 남편, 고마웠다. 그러나 지금은 영 아니다. 여섯 통이라니. 여섯 통이나 사 온 이유는 도대체 뭐였을까. 실컷 먹고 살이나 뒤룩뒤룩 찌우라는 건가. 한 통도 아니고 두 통도 아니고 여섯 통이나 사 온 남편이 원망스럽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원해서 아이스크림을 풍족하게 먹었지만, 결과적으로 나한테 좋은 건 하나도 없었다. 사르르 녹는 달콤한 쾌락만 있었을 뿐,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쾌락이었다. 아이스크림이 사라지자마자 팔뚝에서 살찌는 소리가 들렸다. 실컷 먹어 놓고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풍족하게 가져도 행복을 보장할 순 없구나. 괴로울 수도 있구나. 그러니 지금 갖고 있는 것에 충분히 감사하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 주식이 조금 올랐기 때문이다. 아직 본전치기를 하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아파트 잔금을 치기 전에 손해를 덜 보게 되어 기쁘다. 아오, 그 돈이면 아이스크림이 몇 통이야. 이재명이 당선되면 국내주식이 오를 거라고 하던데 진짜인가 보다. 바보야, 그런데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너 같은 다주택자들을 다 때려잡을 거야. 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이다. 나한테 좋을지 안 좋을지는 알 수 없다.


결국에는 어떻게든 내가 좋게 만들 테니 걱정 없다.


<대차게짜봄>

이재명 당선 후

주식과 부동산 시나리오




25년 5월 30일 금요일 / 있을 때 잘해


내일은 상경하는 날이다. 포도를 하루 종일 볼 수 없다. 상경은 분명 하고 싶지만, 포도를 못 봐서 아쉽다.

“포도야, 엄마가 내일 우리 포도 보고 싶어서 어쩌지?”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찰떡같이 노래를 불러주는 포도. 그래, 있을 때 잘하자. 후회하지 말고.


요즘은 아장아장 걸어가는 두세 살 아가만 봐도 마음이 몽글몽글 아련하다. 포도가 사랑스럽기만 했고 그래서 행복하기만 했다. 사랑과 행복이 전부였던 날들, 포도와 딱 붙어만 있었던 그 시절, 언제 다 지나갔을까. 포도는 쑥쑥 큰다. 나는 팍팍 늙어가지.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새삼 깨닫는다. 포도와 함께 있을 때 더 잘해주고 싶다.


얼른 포도를 끌어안고 자야지.

“엄마, 더워. 나는 엄마랑 떨어져서 잘래. 떼굴떼굴떼굴”

이러면서 저리로 굴러가겠지.


<대차게해봄>

있을 때 잘해

엄마 놀이




25년 5월 31일 토요일 / 도약하는 지금, 살맛나는 지금


아침 일곱 시, 오랜만에 상경한다. 오늘처럼 가방이 무거웠던 적은 없었다. 무거운 평량의 책 두 권 때문이다.

“책을 왜 가지고 가? 그것도 두 권씩이나.”

내 가방을 들어본 남편이 물었다.

“그냥. 내 책 같아서.”

나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내가 쓴 책은 아무리 무거워도 끼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출간 기념회를 여러 번 다녔지만, 오늘처럼 대형 장소는 처음이다. 단순 입장 시간만 한 시간이나 예정되어 있다. 나의 출간 기념회는 언제일까. 어디서, 어떤 모습일까. 그런 파티를 과연 할 수는 있을까.


버스터미널 곳곳에 있는 우리 고장 슬로건이 눈에 들어온다. 도약하는 고장, 살맛나는 고장. 오랜만에 도약하는 기분, 살맛난다. 흠뻑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와야겠다.


<대차게해봄>

도약하는 지금

살맛나는 지금




25년 6월 1일 일요일 / 어떤 글방


오늘 ‘어떤 글방’에서는 이런 단어가 튀어나왔다.

- 테니스 세계는 카스트 제도, 굽네 볼케이노, 마리화나, 고발.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조금 더 자신을 까발리는 용기가 필요해요. 저는 ○○○이야기를 쓸 때 제일 몸을 사려요. 그래서 소설이라고 둘러대죠.”


3월부터 함께했던 어떤 글방. 계획상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지만 아쉬워서 올해 12월 말까지 함께하기로 했다. 우린 아직 불타오르지 못했다.

“여름이 지나야 글빨이 생겨.”

맞다. 달아올라 끝까지 뜨거워진 후 점점 냉정해져야 진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겨울이 되면 활자를 태운 모닥불 앞에서 서로를 데워줄 수 있을 것이다.


책<활활발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글방이 가장 불타오를 때는 어떤 글이 금기를 넘어설 때다. 모두의 마음 밑바닥에 있지만 차마 쓰지 않는, 쓰지 못하는 이야기들. 누군가 그중에 어떤 것을 건드렸을 때, 게다가 그 글이 너무 재미있고 잘 썼을 때, 오도도 소름이 돋으면서 발생하는 짜릿한 전율. 오, 저렇게까지 써도 되는 거야? 여기는 이런 글 막 써도 안전한 곳인 거야? 그다음 주부터 글방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맞다. 글벗이 솔직해지면, 나는 용기를 얻는다. 오늘이 그랬다.


더 불타오르기 위해 내일 내가 해야 할 일은? 잘 쓰겠다는 마음일랑 냅다 버리고, 일단 쓰기. 개나 소나 뭐나 써야, 퇴고도 주제도 성찰도 나발도 생긴다. 그럴 거라 믿는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썼다.


<대차게써봄>

일기, 의식의 흐름, 초단편 소설,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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