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20살 어린 청년의 고민을 진지하게 상담하고 계신 목사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변호사라 보장된 길 대신 목회자의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삶의 수많은 고난을 몸소 겪어오신 분이
20살 어린 청년들의 투정 같은 가벼워 보이는 고민들을 어떻게 공감하고 같이 고민해 줄 수 있는지
사소해 보이는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학교 과제 때문에 힘들어요', '중간고사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요', '친구관계에 문제가 생겼어요' 등
어떻게 보면 보잘것없고 사소해 보이는 고민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바람과 같은 고민들에도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괴로워는 아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그들보다 조금 먼저 그 길을 지나온 나조차도 그들의 고민을 볼 때면 실소가 먼저 나오고
앞으로 세상에 얼마나 힘든 일이 많은데 이런 작은 일에 괴로워하면
어떻게 더 힘든 일들을 견뎌낼까 하는 잔소리 같은 생각이 먼저 앞설 때가 많다.
그런데 나보다 더 많은 삶의 무게를 견뎌온 분이
어떻게 그들이 느끼는 고민의 무게감을, 감정을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의 객관적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그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다.
나의 질문에 목사님은 너무나도 쉽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지금 그 아이에겐 가장 힘든 일이잖아"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 짐의 무게가 객관적으로 가벼운지, 무거운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같은 삶의 무게라 할지라고 그 무게를 견디는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고
견딜 수 있는 힘의 한계가 다르고,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누군가의 짐이 가볍다, 무겁다 평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그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공감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힘겨워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삶에 지쳐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그를 위한 작은 그늘이 되어주는 것,
그러다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작은 동력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공감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