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외국계 기업.
당신은 어떤 모습이 그려지는가?
상황 1.
평일 대낮. 미국 실리콘 밸리의 건물 내 비치된 소파에 둘러 앉아 구글의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하고 있다. 갈색 뿔테 안경을 쓴 히피 스타일의 남자가 열띤 스피치를 하고 있고, 검은 스키니 진을 입고 코 한쪽에 피어싱을 하고있는 한 여자는 손에 들고 있는 태블릿 PC 를 바라보며 기쁨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개발자로 보이는 한 남자는 팔짱을 끼고 이 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어떤 일 때문에 모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는 것.
상황 2.
무채색 양복을 갖춰입은 한국남자 7명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모두가 경직되어 있다. 오리지날 부산어를 전공하신 '상남자' 스타일의 팀장님이 곧 들어와 지난달 부진했던 매출 실적 보고서를 펼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나면 어제 새벽 한 거래처에서 발생된 시스템 에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비스 팀과 기술영업 팀이 함께 모일 예정이다. 고객사 설비 운영부 에서는 우리 기계로 인해 빚어진 모든 손해비용을 청구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적어도 280번은 반복한 것 같다. 그럼에도 고객의 화는 풀리지 않는다. 기계를 다시 정상화 시켜 놓는 것 만이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해결책이다. 현장에서 문제를 잡았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모두가 겨우 숨을 돌린다. 문제 해결을 위한 미팅이 끝나고 나면 내일이 마감 기한인 신규 프로젝트의 입찰용 문서를 제작해야 한다. 밤 11시 까지는 CAD 프로그램을 붙잡고 씨름을 해야 할 것 같다.
당신이 지금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황 1을 떠올리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실제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있는 사람 이라면 상황 2를 떠올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상황 1은 언론이나 광고, 드라마 에서 비춰지는 가공된 외국계 회사생활의 모습이다. (물론 진짜 이런 회사도 실제로 존재한다.) 매우 '한국적인' 스타일의 팀장님에게 업무 보고를 해야 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며, 하루하루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현실은 국내 여느 기업과 전혀 다를바가 없다. 오히려 성과주의에 입각한 외국계 기업의 인사 평가 시스템이나 차등 대우는 더 잔인하기 까지 하다.
내가 40 중반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점 하나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이상과 현실' 이라는 두 세계가 공존 한다는 것이다. 이상은 우리가 바랐던, 그리고 꿈꿨던 곳이고, 현실은 우리가 실제 눈으로 마주하는 실제 세상이다. 어린 시절 꿈꿔왔던 가족의 모습. 그려왔던 일터의 풍경, 그토록 오래 바랐던 물건을 손에 쥐었을때 느끼는 감정들은 이상과 늘 달랐다. 꿈과 이상은 멋진 세상이지만 현실은 매일 매일이 전쟁터이고 가시밭길의 연속일 수 있다. 꿈꿔왔던 모습은 현실과 언제나 괴리를 갖는 법이다. 외국계 기업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아주 심한 장소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내가 외국계 기업을 추천하고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된 것은 외국계 기업만이 가진 여러 기회와 그 오묘한 매력을 인생의 후배들 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다.
세계 여러 국가의 동료들과 영어로 소통하고, 같은 소속감을 지니고, 우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삶.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저 높은 자리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삶.
나보다 나이어린 사장의 막내 아들에게 '이사님' 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삶.
비록 명문대를 나오진 못했지만 적어도 출발선에 나란히 설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는 삶.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제품, 새로운 고객, 새로운 장소를 경험하는 삶.
몸담고 있는 분야의 전 세계적 밸류 체인을 이해하고 보다 넓은 시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삶.
이런 삶의 기쁨이 누군가 에게나 유효한 것은 아니다. 단 100명, 아니 단 한명의 취업 준비생 에게라도 진심이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곧 죽어도 삼성, 곧 죽어도 엘지, 대기업과 의치한(?) 만을 외치는 사회 초년생 들에게 제3의 루트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그들이 도전 정신으로 무장하여 전 세계를 누비며 인생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살수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것으로 내 글의 목적은 완벽히 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