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능 영어시험에 대해
얼마 전 프로축구팀 FC서울의 제시 린가드 (영국) 선수가 한국의 대입 수학능력 시험 영어과목을 풀어 화제가 되었다. 린가드는 한국 학생들이 이런 방식의 난이도 높은 독해 문제를 푼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를 두고 인터넷 뉴스 댓글창에는 한바탕 설왕설래가 벌어졌다. 필자는 현직 외국계 기업의 일개 직원으로서, 곧 중학생이 될 두 아이의 부모로서, 어떤 입장인지 나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한국의 대학 수학 능력시험 영어는 왜 독해 위주일까?"
나는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대한민국의 '산업 구조' 때문이다.
수학능력 시험 영어 이야기를 하다 말고 무슨 대한민국 산업구조 문제까지 들먹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는 불과 70년 전 전쟁을 치른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우리 모두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앗아간다.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인 '희망'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던 대한민국이 전쟁 이후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시 일어서 밖으로 나가 본인과 가족들이 먹고 살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생존을 위한 동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었고, 희망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일'이었다. 일은 전쟁 후 대한민국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자유시장 경제의 논리에 따라 한국은 생산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기술이 없었다. 가진 것은 그저 노동력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보다 기술적으로 더 발전한 나라에 가서 기술을 들여왔다. 기술을 들여와 생산시설을 갖추고 그들이 만들었던 물건을 더 빨리, 더 싸게, 더 정성껏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에 필요한 영어는 오로지 해외의 기술을 이해하고 생산 시설을 갖추는 일뿐이었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외국인과 영어로 펜팔을 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읽을 수 있어야 했다. 해외에서 들여온 생산 시설의 도면들, 시스템이나 장비의 사용 설명서들, 외국의 바이어에게서 날아오는 각종 서신들, 기술을 배우기 위한 대학생들을 위한 책들까지... 모든 것은 읽어야 할 자료였고, 그 자료는 곧 먹고사는 길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영어 교육을 도입했다. 이번에도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영어와는 극단적으로 동떨어진, 관련성이 단 1도 없는 낯선 언어가 바로 영어였다. '우리는 어떻게 영어를 배워야 할까?' 오랜 고민 끝에, 우리보다 먼저 비슷한 길을 걸어간 나라를 찾았다. 바로 옆집, 일본이었다. 우리는 일본식 영어 읽기 자료를 가지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시발점이었다. 영어 읽기(독해)가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과 관련 있는 이유이다.
둘째는, 외국어로서의 영어 (EFL) 학습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것은 바로, '읽기' 이기 때문이다.
영어 학습은 Input과 Output으로 이루어져 있다. Input 이 먼저 이루어져야 Output 이 되는 것은 비단 영어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진리이다. 결국 Input 이 많으면 Output 도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Input을 많게 하려면 영어 노출이 극대화된 환경, 즉 영미권 국가에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영어 학습자는 EFL 환경에 있다. 'EFL'이란,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의 약어이다. 영어는 영어이되,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학습 환경을 뜻한다.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학습자와는 조건이 다르다. 영어를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단 한 글자도 주변 환경을 통해 자연스레 익히기 힘든 영어 학습 환경이다.
EFL 환경에서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을 통해 Input을 강제 주입 시켜야 한다. EFL 환경에서는 요행이 없다. 정해진 길도 없고, 방법도 없다. 눈으로 읽고, 어법을 익히고, 단어를 달달달 외우고, 까먹고, 또다시 상기시키고, 그 과정을 반복하여 장기기억화 시키는 오로지 이 하나의 길만이 존재한다. 지난 50년간 수십만의 영어 교육 관련 종사자가 EFL 환경에서도 쉽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원어민 같은 영어실력을 만들어 보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후천적 노력은 Input을 얼마나 자주, 반복적으로, 의식적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읽기는 가장 효율적인 영어 Input 방법이다. 양질의 문장과, 양질의 어휘를 빠르게 학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읽기의 능력에 달려있다. 읽기 능력이라 함은 '문장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과, 빠르게 그것을 '이해하는 속도'이다. 혹자들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위해 영어를 십수 년 공부했는데 외국인을 만나면 말 한마디 못한다며 한국의 영어교육을 비판한다. 이것은 EFL의 영어 학습과정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실수이다. 영어는 읽기로 시작하여 Input을 먼저 충분히 쌓고, 이 Input 된 능력을 가지고 말하는 능력을 따로 익히는 것이 제대로 된 영어 학습 과정이다. 영어의 세계는 수월하지 않다. 망망대해 와도 같다. 수능 시험을 위한 영어교육은 망망대해로 나가기 위한 '한 척의 배'와 같다. 수학 능력 시험을 충실히 준비한 학생은 대학생이 되어 약간의 스피킹 훈련만으로 매우 유능한 EFL 영어 사용자가 될 수 있다.
셋째는, 평가의 경제성과 공정성 때문이다.
수학능력 시험은 수만 명의 학생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평가를 치러야 한다. 제대로 된 어학 시험이라면 쓰기와 말하기도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량'과 '정성'을 구분해야 한다. 영어 실력은 정량적인 측정에 한계가 있다. 말하기, 듣기, 쓰기 모두 정성적인 면이 강하다. 스피킹 점수에 80점의 기준, 발음에 있어 90점의 기준이 모호하다. 평가 자체가 힘들고, 기준이 불명확하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는 좋은 시험의 조건이 아니다. 결국 교육자들은 정량적인 시험을 위해 읽기 지문을 공평하게 나눠주고, 같은 문제를 풀게 만들고, 공정한 점수를 배점하는 방법밖에 없다.
또한 공정성도 문제가 된다. 세상의 모든 시험은 누군가가 평가를 해야 한다. 단, 평가자의 실력이나 지식의 양이 평가의 기준에 깊이 개입될수록 좋은 시험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객관식 수능시험의 경우 사람의 채점이 필요 없다. OMR 카드로 제출하면 컴퓨터로 채점도 가능하다. 하지만 말하기와 쓰기는 컴퓨터로 채점이 불가하다. 누군가 정교한 영어 실력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인위적인 평가를 내려야 한다. 이 부분에서 공정함에 위배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수만 명의 학생의 답안지를 평가하는 채점자들 또한 다 다르다. 채점자들은 모두 다른 대학을 나왔고, 다른 나라의 영어 환경에서 공부했으며, 영어에 대한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영어라는 과목의 채점과 공정한 평가를 어렵게 만든다.
수능 영어시험이 왜 독해 지문 위주로 된 객관식 시험인지, 필자 나름대로 고민을 해 봤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좋은 답이 없는 경우가 있다. 최선의 답을 찾는 것이 어려울 땐, 현재 쓰고 있는 바로 그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경우가 많다. 내 생각엔,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이 이런 상황이다. 지금의 영어 독해 지문 풀이식 시험이나 평가가 불만인 사람이 있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라고 하면 딱히 현실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한 사람의 학부모로서,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 체제에 불만이 없다. 독해 교육에 맞추어 충분한 읽기를 수행하고, 단어를 충실히 외우고, 문제를 잘 풀다 보면, 이 영어실력은 스피킹, 리스닝, 라이팅 에도 언젠가는 반드시 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왕도가 없다."
고 말했던 송성문 선생님을 욕하던, 혹은 지금도 욕하고 있는 수 백만, 수 천만의 영어 학습자들과 그들의 학부모들은 아직도 영어의 망망대해에서 배 한 척 마련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부 장관을 비난하고, 교사들을 욕하며, 한국을 지금껏 먹고살게 만들어준 소중한 교육 자산과 가치들을 지금 이 순간에도 폄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