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긴 뭐가 아니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진다.
매사에 불만이 가득한 30년 된 친구가 있다. 직장 상사들은 최악인 사람들만 걸리고, 위기에 빠진 팀으로만 옮겨 다니고, 제일 무능하고 말 안 듣는 신입들만 그 친구에게 걸린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스트레스는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 친구가 특히 잘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아니, 그게 아니라"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친구: 본부장이 너무 화를 내서 회사 그만두고 싶어. 맨날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나 모르겠어.
나: 힘들겠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화를 냈다고 하더니 여전히 그런가 보네.
친구: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건지 늘 저렇게 말을 한다. 자기가 말한 그대로 맞장구만 쳤는데도 아니라 하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나는 저런 태도에 별로 화가 나진 않아서 그러려니 하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들 질려서 도망을 가 버렸다. 이제 남은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내가 그 친구에게 큰 도움을 받는 부분이 있다. 예전엔 나도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말을 가끔씩 썼던 것 같은데, 친구가 저러는 것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로는 저 말을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별 의미 없이 쓰던 말이었지만 상대에게는 고집을 부리거나 말을 자르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친구를 통해 배우게 된 것이다.
어제도 내게 전화를 해서 이런 대화를 했다.
친구: 신규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팀원들의 의견이 다 달라서 엄청 고생 중이야.
나: 새로운 프로젝트라 어렵겠네. 의견이 잘 맞아야 할 텐데.
친구: 아니, 그게 아니라, 팀원들이 말을 안 들어.
‘응?? 뭐가 아니라는 거지?’ 싶기도 하고, 마침 나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한 마디를 했다.
나: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거야? 팀원들 의견이 잘 맞아야 된다는 게 틀렸어?
친구: 아니, 그게 아니라…
친구는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여전히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을 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습관이라서 아마도 고치기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사는 게 너무 힘이 들어서 자신의 고충을 저런 말로 시작해 나에게 풀어놓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서로가 다르기에 세상이 더 다채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첫걸음일 텐데… 친구를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다음번에 통화를 할 때는 나도 한 번 이렇게 말해봐야겠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미지 출처: 1. Unsplash+, 2. 이희정, 3. MBC '라디오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