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평등한 관계 형성에 대한 고민
장애 관련 봉사나 현장 경험을 하면서 보게 되는 최악의 장면은 열등감에 찌든 사람들이 '적어도 내가 이 사람보다는 낫다' 생각하며 장애인을 대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할 수 없었던 "괜찮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며 보잘것없는 자신의 미소도 친절로 포장될 수 있는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자기 위안을 찾는다.
오래전 자신의 제자를 먼지 취급하여 나를 열받게 했던 교수가 장애인을 대하는 모습이 그러했다.
어려 보이는 장애인의 실제 나이를 파악할 생각 없이 무작정 아이 취급하며 하대하는 복지사들을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보게 된다.
제도가 좋고 프로그램 기획이 훌륭해도 그것을 실행하는 실천가의 태도에 따라 이용하는 사람에게 더 유익이 될 수도, 오히려 상처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판사 문유석이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이야기한 법조인의 특권은 사회복지사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저 월급 받고 일하고 자기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자기 일에서 5분만 더 고민하고, 말 한마디만 더 따뜻하게 해 주어도 큰 고난의 한가운데서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황송할 만큼 말이다.
(p.108)
물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약자는 아니며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약자를 만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마주하기에 그가 이야기한 일터와 유사한 상황에 있다.
열등감에 찌든 사람들은 당연히 (모순적이게도) 자아도취에 빠져 있느라 5분 더 고민할 기회도, 직업적 특권도 놓쳐버리겠지만, 정작 나 자신은 이를 값지게 사용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저들의 태도에 치가 떨린 나머지 과도한 친절은 위선이라는 이유로 되려 위악을 떨고 있지는 않았나.
당분간 현장에서 나의 과제는 평등한 관계 형성을 위한 적정선을 찾는 일이 될 것이다.
*제자를 먼지 취급한 교수 이야기: 봉사활동을 하며 어떤 대학 교수&제자들을 만났다. 식사 중 그 교수는 내성적인 한 제자를 가리키며 "얘는 강의실에서 존재감이 없어. 별명이 먼지야, 먼지"라고 했다. 옆에서 싹싹하게 물도 따르고 손뼉 치며 웃어도 주는 다른 봉사자와 비교하며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제자를 위한 동화를 하나 지어 선물했는데, 후에 "시빵 수필빵" 매거진에도 올릴 예정이다.
*적정선에 대한 고민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