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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현장일기

(5) 그림과는 달리 시원섭섭했던 첫 퇴사 소감

by 식빵이

“선생님 퇴사하신다면서요? 언제까지 나오세요?” 내가 진행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어머니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며 물어보셨다. 어젯밤 꿈에서 말이다.


사실 나는 지난달 퇴사했다. 한때 그토록 꿈꾸었던 복지관 근무를 21개월로 마무리한 것이다. 한 달이 지나가는 이제야 생각이 좀 정리된다.


가장 가고 싶던 팀으로 입사하여 여러 프로그램과 상담을 2개년도 동안 맡아도 보고,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온라인 미디어 사업까지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회복지실천 현장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분들과 상담하며 나의 공감력, 더 구체적으로는 공감을 위한 상상력의 지평이 넓어진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또 한 가지 수확은 나를 한없이 무장해제시킨 소중한 동료들을 만났다는 점이다. 그들 덕분에 그나마 버텼고, 그나마 웃었다.


퇴사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들을 존경하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어쩌다 보니 학교라는 시스템에 진입한 이후부터 취업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작년 언젠가부터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그대로 품은 채 지내다가는 뭔가를 더 펼쳐보기도 전에 꺾일 것만 같았다.


꿈 먹고 사는 나에게 복지는 내 삶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대로라면 내 삶이 그냥 통째로 꺾여버릴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마구 위험 신호를 보냈고, 나는 결국 멈추기로 했다.


학창 시절 내가 순위에 그토록 집착했던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나면 항상 입안에 쇠 혹은 피 맛 같은 것이 느껴져 한동안 숨을 골라야 했다. 지금이 마치 그 순간 같다. 예상외로 하루하루가 어찌나 빨리 가는지 아직은 지루할 틈이 없다. 이제야 서서히 두 발이 다시 땅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당분간 조금 더 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특히 잘할 수 있는 것, 좀 더 욕심낸다면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곰곰이 기도하며 생각해보려 한다.


다만 한 가지, 이번 직장에 소속되어 가장 아쉬웠던 점이 수어통역 의뢰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었기에, 가능하면 수어통역사로서의 일은 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만나게 될 세상은, 삶의 모습들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뭔가에 대해 기대하는 숨을 들이쉴 줄도 아는 것을 보니 확실히 많이 나아지긴 했나 보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다. 돌아봐도 감당하기 버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언젠가 에세이 섹션에 올릴 증오와 혐오의 차이에 대한 소고도 그 시간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복지관에서 좀 더 근무해 볼걸'하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다. NGO를 경험한 이후 나는 다시 '준공공기관'이라 할 수 있는 복지관의 시스템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 복지관 근무였을 그때 조금만 더 경력을 채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다시 복지관으로 가보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 묻는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의 어떤 성향을 깨달아버렸기에(간략히 말해 나는 우리나라 공공 행정 운영 방식과 안 맞다), 보다 유연한 다른 시스템을 경험해 버린 이상, 그것은 이제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아, 물론 사단법인이라고 모두 행정이 유연하리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게 조직의 연식의 문제인지, 인적 자원 교체 주기의 문제인지, 단순히 관리 계층의 선호의 문제인지 아직 정리는 잘 되지 않지만 말이다. 서로 상호작용한 결과 아닐까 싶기도.
이때도 지금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데는 변함이 없는데 결이 약간 달라졌다. 이 무렵에는 좀 더 대세에 가까운 선택의 범위 내에서 그 일을 찾으려 했는데, 지금은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뭔가를 발굴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영감은 바로 첫 직장인 복지관 사례관리 도중에 생겨났다. 그래서 짧은 근무가 아쉬운 것도 있다. 21개월로 어쩌면 내 삶 전체를 바꿔놓을 인사이트를 얻었으니,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회의주의자답게 결론짓자면 음, 그랬으면 본문의 말처럼 오히려 날개가 꺾여 지금과 반대 지점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것. 뭐가 됐든 과거의 자신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했을 것임을 받아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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