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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 Nov 24. 2023

슈비네의 구도자 에르베(2)

첫 번째 Workaway

WWOOF의 실제에 대해 궁금한 분들을 위해, 내가 경험했던 Woofer의 일상에 대해 더 자세히 쓰고자 한다. 에르베의 집에서는 하루 4시간씩 채소밭 일구는 일을 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바깥 날씨가 너무 추우면 다른 일을 준비해 두겠다고 했었다. 다행해 내가 있던 동안은 그다지 추운 날들이 아니었다.

 Woofer는 대개 아침 7시 반이면 아침식사를 하고 일하러 나갈 준비를 한다. 4~5시간 일을 하려면 8시에는 일을 시작해야 12시나 1시까지 끝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골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난다. 나는 잼을 바른 바게트와 커피, 한 두 개의 과일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내가 할 일은 채소를 심기도 전에 자라나 있는 잡초를 제거하여 올해 채소 농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후, 에르베가 준비해 둔 장화를 신고 농기구를 챙겨 혼자 밭에 나갔다. 그날 일해야 할 장소와 일의 분량은 언제나 전날 저녁에 에르베가 알려줬다. 신통하게도 그가 제시한 일거리는 정확히 4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야 끝낼 수 있는 분량이었다. 아니다. 내가 4시간에 딱 맞춰서 일을 끝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시골에서 자라난 탓에 그런지 그런 밭일이 생소하지 않아서 처음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임할 수 있었다. 잡초는 그다지 무성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종합된 생각이지만, 그 지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하자면 부득이하게 세 가지의 식물과 씨름해야 한다. 최대의 적은 민들레다. 밭에 아직 다른 잡초가 자라지 않은 이른 시기에도, 이놈의 민들레는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들판이 온통 노랗게 보일 정도로 어디에서든 꽃을 피운다. 이 잡것은 뿌리를 땅속 깊이 수직으로 박고 있어서 힘 꽤나 써야만 뽑아낼 수 있다. 동그란 모양의 뿌연 솜털 같은 홀씨들을 불어 날리며, 우리가 한 때 즐거워했던 순박하고 친근했던 꽃이었건만, 밭에서는 악랄한 이기적 동물에 의해 몹쓸 식물로 규정될 뿐이었다. 또 한 가지는 리즈롱이라고 부르는 나팔꽃 풀인데, 이놈은 땅속 깊은 곳에서 줄기 뿌리로 뻗어 나가며 자라 올라오기 때문에 도무지 완전 퇴치가 어려운 녀석이다. 딸기밭에는 어디에나 리즈롱이 자라고 있는데, 일단 번성하면 퇴치하기가 어려워서 차라리 딸기나무를 다른 밭으로 옮겨 심은 적도 있었다. 세 번째는 오르티(Ortie)라는 쐐기풀이다. 피부에 닿기만 해도 쓰리고 아프게 하는 미세하고 예리한 쐐기가 돋아 있어서 그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불가피하게 이 까칠한 존재를 상대하려면 두꺼운 장갑과 옷으로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풀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에르베네 집에 요가수업을 하러 온 어떤 프랑스 부인이 몸에 매우 좋은 수프라며 내게 권한 것은 다름 아닌 이 오르티 수프였다! 사실 이 풀들을 잡초라고 부르며 미워하는 게 온당치 않은 처사임을 나도 안다. 판화가 김철수는 ‘단지 논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잡초라 불린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WWOOF를 하는 동안 내내,  나는 이 죄 없는 식물들을 뿌리 뽑아야 할 적으로 삼고 그들과 싸워야만 했다. 그들은 내게  꽃으로 인사했을 뿐, 어떤 불평도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도.

<첫째 날, 나는 시골출신으로서 실력을 발휘하여 민들레와 냉이로 덮여 있던 목장 위의 딸기 밭을 깨끗하게 일구어 놓았다.>

오전에 힘껏 밭일을 하고 나면, 오후는 피곤해졌고, 이틀째부터는 온몸에 근육통이 생겼다. 평생 책상에 앉아 살아왔던 나 같은 도시의 약골에게는 하루 4시간 노동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 근육통은 2 주가 지나서야 사라졌다. 나는 피곤한 오후에도 노트북을 붙들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다음 WWOOF 일정들을 조정하느라 여전히 많은 시간들을 거기에 소모하고 있었다. 좀 더 여유 있는 Wwoofing을 위해서는 미리 사전에 모든 일정을 확실하게 확정하고 여행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오후 시간을 그럭저럭 보내고 나면 해질 무렵에 에르베가 집에 돌아왔다. 그는 석공이다. 인근의 마을들에서 일감이 들어오면 설계와 시공을 수행해 주는 일을 한다. 그의 집 구석구석이 그렇게 깔끔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이러한 직업적 수완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Woofer를 선정할 때에도 특별히 미술적 작업에 능한 사람을 선호했다. 그런 재능을 가진 Woofer들의 도움을 받아서 집안 구석구석을 멋지게 치장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농장과 집을 관리하는 일들을 매일 조금씩 해 나간다. 짐승들에게 먹이를 주고, 집안을 정리하고, 밭에 거름을 뿌리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는 식사가 끝나면 거실에 앉아 인터넷으로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한 다음, 자리에 누울 때까지는 조용히 독서를 했다. 지뜨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고객의 예약과 일정들을 확인하고 메일로 소통하며, 다음날 할 일들을 점검하는 것 같았다. 그의 일상은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는 언제나 말없이, 혼자서, 하나씩 천천히, 그리고 계획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의 행동과 태도에서 점점 호감과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둘째 날의 과업은 집 뒤에 있는 텃밭을 정돈하는 일이었다. 잡초를 제거하기 전>
<잡초를 제거한 후>

하루는 에르베가 내게 장작을 패는 일을 요청했다. 매일 잡초를 제거하는 일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던 터라 장작패기는 반가운 메뉴였다. 하지만 막상 한 시간 정도 장작을 쪼개고 나니 팔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호기 있게 시작했건만 익숙지 않은 망치질은 내게 힘든 일이었다.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점점 망치가 버겁게 느껴지고 있을 무렵, 바로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마티유가 다가와 내가 장작 패는 것을 지켜보더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웃옷을 벗어던지고 망치를 집어 든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힘들어할 것을 예상한 에르베가 마티유에게 나를 도와주라고 얘기해 놓고 나갔던 것이다.) 마티유는 능숙했다. 내가 오전 내내 해도 다 못할 것 같은 분량을, 한 시간 동안 한번 도 쉬지 않고 망치를 휘둘러서 끝장을 내주었다. 그는 장작을 패 본 경험이 많았고 나이 또한 젊었다. 마티유 덕분에 나는 그가 패 논 장작을 대문 안쪽에 쌓는 일만 하면 되었다. 고맙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 일로 인해 마티유와 나는 훨씬 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나는 장작을 그냥 쌓아 올리는 것이 재미없어서 심심풀이로 둥그런 곡선 모양으로 쌓아 두었는데, 나중에 이것을 본 에르베는, 이것이 바로 동양인에게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는 곡선미라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점심을 각자 챙겨 먹은 후에, 마티유와 나는 마당 아래에 있는 별채에 내려가서 당구를 치며 함께 오후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온 팔과 어깨에 근육통이 왔고 오른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혔다.

<장작패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해결사 마티유>
<내가 쌓아놓은 장작. 에르베는 사진을 찍으며, 저걸 허물어뜨리는 것보다는 올 겨울을 춥게 지내는 게 낫겠다고 농담했다.>

기다리던 토요일이 왔다. 노동 없이 쉬는 날이다. 전날 저녁에 에르베가 준 리용 관광 안내를 들고 리용 관광을 나섰다. 버스 정거장까지는 마티유가 차로 데려다주었다. 슈비네에서 리용까지는 자동차로 20여분을 가는 거리다. 사실 나는 도시를 구경하는데 별 흥미가 없었다. 그저 혼자서 한가롭게 거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유유히 흐르는 론 강을 따라 리용의 구 시가지를 산책하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리용에서 볼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에르베를 페라슈역 근처에서 만나 그의 차를 타고 귀가했다. 때마침 프랑스는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로 인해 전국의 대중교통이 연일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기에, 걱정이 되었는지 에르베가 내게 연락해 온 것이다.

<론 강에 걸쳐있는 리용의 인도교, 빨간색 계열이지만 뒤쪽의 건물들 색상과 잘 어울린다.>
<리용의 구 시가지 모습>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에르베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은 보졸레 마을들을 구경시켜 줄 테니 같이 다녀오자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즉흥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에 따라 빈틈없이 시간을 채워 나가는 그의 시간표에 나를 위한 가이드 시간이 삽입돼 있었다니!


다음날 오후, 그는 여느 때와 같이 허름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보졸레 지방을 둘러보자고 했다. 슈비네로부터는 차로 30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나는 사실 잘 보존된 중세 시대의 마을들이 그렇게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테르낭(Ternand)과 샤띠용(Chatillon), 그리고 우엥(Oingt)을 연이어 둘러보았다. 포도밭으로 덮여 있는 들판을 배경으로 야트마한 언덕이 있고, 마을은 그 언덕에 얹혀 있으며, 꼭대기에는 고딕 건축양식의 교회가 자리하는 전형적인 중세 마을들이다. 그중에서 우엥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막 포도나무 가지에서 잎이 피어나고 있는 연초록의 들판이 고색창연한 마을의 건물들과 어우러져서, 마을 풍경은 마치 동화책 속에 있는 파스텔 그림처럼 평화롭고 단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환상적인 기분에 젖어들게 하는 것은 마을마다 보존되고 있는 집들의 벽면이었다. 집들은 모두가 황금빛 작은 돌들을 쌓아 올려 지어진 것들이었다. 그 돌들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더욱더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써 표현할 재주가 없다. 사람들은 그 돌들은 삐에르 도레(Pierres dorées, 황금석)라고 불렀다. 돌들이 깔린 좁은 골목들은 어디든 다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예뻤다. 나와 에르베는 별 말없이 아주 느린 걸음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걸었다. 에르베는 나의 걷는 속도에 보조를 맞추어, 때로는 조금 앞서가기도 하고 때로는 조금 뒤에서 따라오면서 내가 혼자 마음껏 이 풍경들을 감상하도록 배려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Ternand 마을의 모습. 출처:  https://www.tourisme-en-france.com>
< 보졸레 지방의 대표적인 중세마을 우엥 Oingt>
<우엥의 골목길. 사진출처 : https://www.destination-beaujolais.com/oingt.html>
<말로써 설명하지 않는 나의 일일 관광안내자(?) 에르베>
<우엥의 골목길, 해가 비치면 더욱 황금색으로 빛난다. 따뜻하고 정감 있다.>
<테르낭의 골목 풍경>


내가 동화 속 마을에 갇혀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어느새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나 보다. 어디서 이런 건축재료들을 가져왔을까 궁금해하는 나를 보고, 에르베는 더 들러야 할 곳이 있다며 앞서 걷던 나를 돌려세웠다. 에르베가 다시 차를 멈춘 곳은 어느 야산의 언덕이었다. 이제 여기서 그 동네들의 비밀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과연 그랬다. 그곳 마을들의 벽면을 장식했던 그 아름다운 황금석들을 캐냈던 채석장이었다. 채석장은 기울어진 저녁 햇살 때문에 더 아름다운 색으로 빛났다. 그 주변은 길에 깔려 있는 자갈들도 다 황금색이었다. 에르베는 모든 것을 나서서 설명하는 대신에, 묻는 것에 대답하는 방식만으로도 훌륭하게 안내를 수행하고 있었다. 장황한 설명보다는 해석과 상상을 독자에게 맡기려는 노련한 작가처럼, 그의 언어는 최소한으로 간결했다. 해가 비스듬히 비추는 오후 시간을 선택한 것도, 방문할 마을의 순서를 정한 것도, 채석장에 들를 시간을 할애해 둔 것도, 모두가 다 그의 주도면밀한 계획이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세계 현대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가 지었다는 뚜렛뜨의 생뜨마리 수도원(Le couvent Sainte-Marie de La Tourette)을 둘러본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아쉽게도 건물의 내부를 들어갈 수 없었다.

                                                                           

<황금빛 석재(les pierres dorées)를 캐냈던 채석장 Les Carrières de Glay>


저녁 식사 후에 우리는 우엥에서 내가 사 온 보졸레를 마시며 이런저런 많은 예기를 나누었다. 내일이면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 에르베의 집에서 있었던 나의 첫 번째 Workaway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일주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에르베와 마티유가 보여준 그들의 생활양식, 타인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조금씩 엿보았던 삶에 대한 철학의 일면들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난히 말수가 적었던 그였지만 대화 말미에, “우리는 호스트와 우퍼로 만났지만 이제 친구가 되었다.”라고 결심하듯 말했다. 그것은 선언처럼 들렸다. 실제로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친구처럼 대화하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에르베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니꼴, 그의 아들 마티유와도 친구가 되었다.)

그는 자기 방에서 양피지로 표지가 만들어진 두툼한 노트 한 권을 가져와서 내게 내밀었다. 방명록이었다. 일주일간 자기 집에서 가졌던 인상을 한 페이지 정도 손으로 써 달라고 했다.  먼저 다녀간 수많은 우퍼들의 글이 적혀있었다. 그는 자기 집을 다녀간 Woofer들의 흔적을 이런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Woofer들의 나라 이름을 판자에 새겨서 언덕 위에 설치했다는 얘기는 앞선 글에서 쓴 바가 있어 생략한다.


나는 그에 대해 아직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제 친구로서 함께할 긴 시간에 남아있다. 일부러 아껴둔 비밀처럼 서로를 하나씩 알아가게 될 것이다. 그의 집 여기저기에 장식돼 있는 석조 불상, 딸 에바의 방에서 보았던 아프리카에서 찍은 그의 사진들, 하루 저녁 식사를 함께 했던 그의 전처 모니카, 그리고 엷은 미소 위로 가끔 스치듯 지나가는 그의 쓸쓸한 표정에 대해서도.


그가 요청한 대로 방명록에 한 페이지의 글을 썼다. 생각 끝에 “슈비네의 구도자에게”라고 제목을 붙였다.


P.S. :

*‘보졸레 지방’(La région du beaujolais)을 말할 때의 '지방(région)'이란 현재 프랑스 행정체계에서 말하는 지방‘Region’의 개념과는 다른, 자연적인 지역을 일컫는다. 리용의 북쪽에 위치한 포도주 산지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론(Rhône), 손느-에-루아르(Saône-et-Loire), 그리고 루아르(Loire) 주에 걸쳐 있다.

** 독자들 중에는 보졸레라는 와인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 나는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특히 보졸레 누보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왜 그렇게 유명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끔씩 프랑스의 고급 와인으로 평가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갓 숙성시킨 보졸레 누보는 전통적인 고급 와인의 기준에도 못 미칠 뿐 아니라, 맛도 내세울 게 없고, 잠깐 한 때 먹어보는 값싼 포도주이다.>

<보졸레 지방의 평화로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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