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엔 햄버거를 먹어야 하죠?
1993년의 여름, 전국에서 한 편의 영화에 열광하고 있었다. 나는 학교나 학원에서 듣는 친구들의 영화 이야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공룡이 정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진짜 같은 놈들이 나와서 사람을 잡아먹어. 감독이 그 유명한 스필버그래.
바로 그 영화, 「쥬라기 공원」의 한국 개봉일은 1993년 7월 17일이었다. 전국에서 백만 명 넘게 이 영화를 보았고, 나는 한 달이 넘도록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미 영화를 본 막내 이모가 「쥬라기 공원」을 보고 싶다는 조카들을 구원해 주기로 했다. 우리가 공룡을 만나러 간 곳은 강남고속터미널 5층에 있던 반포시네마였다. 이후로도 몇 년 간,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영화는 전부 여기서 보았다. 극장 문을 연 순간부터 낡기 시작했을 것 같은, 그래도 사운드 하나는 심장이 다 아플 만큼 큰 곳이었다. 아이들의 스릴을 고조시키기 위해 이모는 상영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어른 없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영화는 훌륭했다. 너무 훌륭해서 몇몇 장면에서는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하지만 이날 역사적인 블록버스터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를 보기 전에 먹었던 햄버거였다. 터미널이라 한식이나 분식을 파는 식당도 많았고 상영 시각도 넉넉히 남아 있었는데 왜 그때 우리는 햄버거를 먹었던 걸까. 아마도 이모는 할리우드산 오락 영화를 볼 땐 식단도 그 나라에 맞추는 것이 재미를 더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이전까진 영화관에 갈 기회도 별로 없었고 햄버거를 먹을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가 서로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데리버거, 쟁반 위에 수북이 쌓인 감자튀김, 각자 하나씩 부여잡은 탄산음료, 곧 고대하던 영화를 본다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 그건 꼭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관문 같았다.
한번 관문을 넘어서자 극장에 가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여전히 동네 대여점에 만 원씩 예치금을 걸고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게 내 문화생활의 중심이긴 했지만, 친구들과의 영화 관람은 이제 보호자 없이 우리끼리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묘한 성취감을 좌석 밑바닥부터 깔아주었다.
그럴 때마다 햄버거를 먹었다.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이미 영화를 보기 전에 햄버거를 먹는 게 당연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저렴하고 맛있고 간편하고 냄새도 나지 않아 오로지 영화에만 집중하게 해 줄 패스트푸드.
나는 지금도 막내 이모가 선보인 영화용 식단이 모두가 따르는 관례라는 데 안도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누구나 상식선에서 자연스럽게 알거나 할 수 있는 일도 나한텐 어려웠던 경우가 많았다. 조금 비싸 보이는 식당에 가서 자연스러운 척 주문하는 일,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거나 미용실에서 원하는 스타일로 잘라달라고 말하는 일, 서울에서 한평생을 살았음에도 대중 교통이 아닌 자동차로 어딜 어떻게 가야하는지 설명하는 일, 고기를 맛있게 굽거나 맥주 거품을 황금 비율로 따르거나 막걸리를 흔들어도 거품이 넘치지 않게 따는 일, 말을 재미있게 하는 건 고사하고 좀 사람답게 말하는 일. 여하튼 모든 게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사는 내내 모든 시절에 걸쳐 자주 비웃음을 샀고, 그러기엔 웃고 있어도 자존심이 너무 셌다. 그래서 남들 다 그냥 하는 일을 혼자 따로 연습하고는 했다.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993년 여름만큼은 상식 하나쯤 쉽게 배웠다. 영화를 보기 전에 햄버거를 먹는다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에서 햄버거는 내 식단의 중심에 들지 못했다. 극장에 가기 전에 먹는 특별식이랄까. 최소한 집에서 영화를 볼 때 햄버거를 사 와서 먹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내게 햄버거는 오직 맥도날드뿐이었다.
햄버거는 미국인들이 만든 음식이다. 맥도날드의 고향인 바로 그곳. 독일 함부르크와 햄버그스테이크가 어원이긴 하지만 이건 미국인들이 좀 있어 보이려고 유럽의 언어를 끌어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최초로 햄버거를 만들었다고 우기는 사람도 여럿인데, 그중 가장 오래된 주장은 1885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용돈을 벌어보려던 한 소년에게서 나왔다. 찰리는 축제에서 미트볼을 팔다가 사람들이 빨리 끼니를 해결하고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미트볼을 납작하게 눌러 빵 두 장 사이에 끼워 팔았다. 그게 결과적으로 축제에서 가장 큰 인기 상품이 됐다. 찰리가 아니라 자신이 햄버거의 창안자라 주장하는 다른 이들 역시 햄버거를 만든 의도는 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과 먹는 수고를 아끼자는 것이다.
햄버거와 비슷하거나 그 기원이라 할 만한 음식은 많다. 빵 사이에 다른 재료를 넣어 먹는 음식은 로마 제국 시절부터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햄버거가 다른 유사 식품과 달라지는 지점은 바로 만들어진 의도에 있다. 빠르고 간편하게, 어디서나 똑같은 맛으로. 이제 세상이 요리하고 먹는 시간도 줄여야 할 만큼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햄버거가 일상적인 음식이 된 어떤 지점이 있었다. 빨리 먹고 쉬려고, 또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싶지 않아서 부러 회사에서 10분 넘게 떨어진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즐겨 사로잡혔던 마법이 퇴색하는 게 느껴졌다. 이제 햄버거는 맛도 그냥 그렇고 몸에도 좋지 않은 설탕, 소금, 지방의 혼합물에 지나지 않았다. 케첩과 기름 냄새 뒤섞인 실내에 2인 테이블을 껴안고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선 분식집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감정이 읽혔다. 아니, 감정도 없이 그저 텅 빈 구멍을 마주보는 기분이었다. 가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정크 푸드가 어울리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사라진 구시대의 극장, 그토록 보고 싶었던 기념비적인 영화, 그리고 절친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열의에 속았을 뿐이지 햄버거는 처음부터 이런 음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햄버거가 몸에 좋지 않다는 상식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도 있다. 쓰고 남은 부위만 가져다 만든 냉동 패티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제대로 된 소고기를 그릴에 바로 구워 신선한 빵과 채소로 덮어 내놓는다면 햄버거도 훌륭한 식사가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에선 흔히 ‘수제 버거’라 불리는 햄버거들이 이런 편에 서 있다. 내가 지금껏 먹었던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햄버거는 포틀랜드(역시 미국이 본고장인 음식 아닌가!)의 한 술집에서 먹은 ‘홈메이드 버거’였는데, 먹는 내내 혀끝으로 삶의 다른 지평을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이후로 나는 내 안에 새겨져 있는 정크 푸드를 섭취한다는 죄책감을 건드리지 않고 햄버거를 먹고 싶을 땐 ‘느린 햄버거’를 찾는다. 하지만 패스트푸드로서의 햄버거와 바로 그릴에 구운 햄버거를 같은 음식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햄버거와 샌드위치가 정확히 뭐가 다르지? 싶으면서도 둘을 다른 범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맥도날드 햄버거와 느린 햄버거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후자는 기대하던 영화를 보기 전에 먹을 음식은 아니다. 느린 햄버거는 엄연한 식사이기 때문이다.
1993년,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햄버거를 먹는다는 게 꽤나 멋진 일이라는 걸 알았다. 가만 되짚어 보면 패스트푸드 햄버거에 얽힌 유사한 경험은 또 있다. 단체 소풍에서 도시락으로 나온 이름 모를 업체의 햄버거가 그렇게 반가웠다는 것, 학교나 회사에서 행사를 준비하며 막간에 입안에 쑤셔 넣던 햄버거가 의외로 배부르고 힘이 됐다는 것, 멀리 여행을 떠나며 공항이나 차 안에서 먹는 햄버거가 그렇게 맛있다는 것. 종이 포장지에 싸여 있고 육즙이고 자시고 케첩이나 줄줄 흘러내리는 건조한 패스트푸드 햄버거야 말로 축제를 연상케 하는 음식이다. 찰리가 햄버거를 처음 만든 곳도 축제였던 것처럼.
사실 햄버거가 진짜 좋았던 이유는 그거다. 앞으로 있을 즐거움을 위해 한 끼를 조금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일탈의 쾌감을 즐겼던 거다. 점심시간에 혼자 가서 앉았던 맥도날드의 홀이 그렇게 어두워 보였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 앉은 우리에겐 기념하고 기대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부드러운 번과 감칠맛 나는 고기, 새콤달콤한 소스도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구원해 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