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애틀 근처 타코마라는 곳에서 어학연수를 받을 때였다. 일본인 친구가 홈스테이 주인에게 생일 카드를 열심히 적는 걸 보았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적으라고 한다. 덩치는 산만한데, 쪼그리고 앉아 꾹꾹 눌러쓴 글씨를 보니 마음이 찡하다.
그 뒤로 가족들, 조카들, 친구들 결혼하고 나서는 시어머니, 형님, 시조카들 기념일 명절에 부지런히 카드를 썼다. 마음이라도 듬뿍 받길 바라면서.
그리고 얼마 전 독일에서 날아온 늦은 성탄 카드에 다시 한번 손 글씨의 힘을 느낀다. 니콜의 근황과 새해를 위한 기도가 담긴.
여름의 열기가 스멀스멀 피어나던 6월, 난 보쿰의 한 독일가족 2층 작은방에 둥지를 틀었다.
혹시 근처에 잘하는 미용실이 있니?
카이네 아눙! (독일어; Keine Ahnung, 잘 몰라)
제시카(엄마)는 어디 있니?
Keine Ahnung!
독일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 중 하나가 ‘Keine Ahnung’이다.
질문하는 입장에서, 대답하는 사람이 짧게 Keine Ahnung!이라고 하면 더 말할 의욕을 잃어버린다. 독일 사람들은 확실히 아는 정보가 아니면, 대답하길 꺼렸다.
새로운 가족과 친해지려는 그때. 함께 살았던 아네테 아주머니의 조카인 니콜을 만났다. 니콜에겐 오빠가 두 명 있었는데, 이름은 톰과 크리스였다.
독일에 와서 다행이었던 것은, 니콜을 비롯한 주변 독일인들의 이름이 짧아서 외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 (주인집 아저씨는 ‘막시밀리안’, 시간이 걸렸다.)
난 십 대였던 주인집 아주머니의 자녀들보다, 니콜과 친해져 보기로 했다.
마침, 니콜도 도르트문트의 중국 음식, 베트남 음식 등 아시아 음식을 좋아했고, 더구나 한국 라면도 집안에 쟁여두고 먹고 있었다.
나무젓가락만 사용했던 니콜은 한국에서 공수한 쇠젓가락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난 젓가락질 신공을 보여주며 니콜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곱슬곱슬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니콜을 보며,
“니콜, 나도 파마하고 싶은데, 미용실 아는 데 있니?”
“keine Ahnung!”
사실 니콜의 머리는 태생적으로 곱슬머리였던 것.
나 같으면 어디서 들어본 미용실이라도 주절주절 이야기했을 텐데, 딱 잘라서 모른다니.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좀 상한다.
니콜에겐 반려견이 한 마리 있었다. 난 공원을 산책하면서, 호랑이같이 우람하고 진귀한 대형 개들을 접한 후였다. 니콜 옆에 있는 보더콜리종 ‘넬리’는 평범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강아지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다. 공원에서 작은 개가 앙 하고 무는 바람에, 강아지와 별로 친할 수 없었던 나는.
주말이 되어 니콜과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었다.
니콜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네, 아버지, 또요?”
“네, 몸조리 잘하세요.”
니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물었다.
“니콜, 무슨 일이야?”
“아, 아버지가 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셨데.”
니콜은 속상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본인 탓이지 뭐. 항상 오토바이를 조심히 타지 않고 벌써 몇 번째인지.”
난 아버지의 오토바이 사고를 두고, 태연하게 아버지 탓이라며 이성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니콜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 같으면 놀라서 부산을 떨었을 텐데. 어떻게 저런 침착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독일 동네 풍경 photo by Haengpil (Philip) Shin
배낭여행 중 네덜란드의 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어린아이가 움직이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아이가 뒤로 넘어진 것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 아이를 일으킬 생각도 없이 태연히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아이는 스스로 꾸역꾸역 바로 앉았다. 니콜도 누가 위로해주지 않았지만, 벌어진 나쁜 일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니콜은 Keine Ahnung 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Keine Ahnung이라는 대답은, 모호한 답변으로 상대방에게 혼동을 주지 않고,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독일인들이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부러웠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모른다고 하면 무식하다고 혹은 불친절하다고 생각할까 봐 사족을 붙일 때가 많다. 반쪽의 정보라도 전달하다가, 길의 끝에서 목적지를 찾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가 나빠, 상대를 탓하기도 어렵고 시간은 버리는 경우.
독일에 있을 때, 한국에 있던 어머니가 횡단보도 보행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를 들은 니콜은 자신의 아버지 오토바이 사고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인 것과 달리, 어머니를 걱정해 주었다.
“괜찮으셔? 한국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니?”
엄마의 상태를 자세히 묻던 니콜을 보니,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마음이 느껴졌다.
니콜과 도르트문트 시내에 가서 옷을 골랐고. 독일의 여름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민소매 티셔츠를 골라 일탈을 시도하고, 독일의 여름을 만끽했다.
니콜은 나를 도르트문트의 디스코에 데려갔다. 함께 무표정하게 테크노음악에 맞추어 어기적어기적 몸을 흔들었다.
한국산 신라면을 끓여주니 너무 맛있다면서 호호 불며 입에 부채질 하던 친구.
니콜에게 지난주 크리스마스카드가 도착했다. 니콜의 사랑스러운 반려견 ‘넬리’는 하늘로 긴 소풍을 떠났다고. 그리고 그 자리를 채워주는 연인 ‘미카엘’이 등장했다고 한다.
니콜이 꼭꼭 눌러쓴 삶의 이야기는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진하게 내 마음을 적신다.
그리고 오늘 도착한 ‘독일 엄마’ 아네테 아주머니의 연하장. 사랑과 격려의 말들로 앞뒤면을 꽉꽉 채운 편지를 언제 받아 보았을까?
독일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마음은 연말이 되면 도르트문트에 머문다. 그리고 그 마음은 다시 연초가 되면 한국에 돌아온다.
지구 반 바퀴 넘는 곳에서, 이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매일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삶의 쳇바퀴에서, 멈추지 않도록 부드러운 기름칠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