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독일서 간호사로 일했던 고모는 다시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에겐 무엇보다 자유가 중요해.”
고등학생인 나에게 말했다. 내가 고모의 말을 이해하든 못하든. 고아처럼 남겨진 남동생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상관치 않겠다는 것처럼.
그로부터 몇 년 후 난 독문학과 졸업 후 대학원엘 진학하느니, 독일에 유학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에게 독일에서 인문학이든 실용적인 기술이든 부딪혀 배우겠다고 말했다. 극심한 불황 속, 중소기업 취업은 기피하는 친구들 사이 은연중 ‘취집’이란 말이 돌았다. 난 밤낮없이 식당 일에 매달리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우울증 약에 의지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엄마 사이에서 ‘독일 유학’만이 숨 쉴 수 있는 틈처럼 느껴졌다. 교수님이 권유했다고 당당히 덧붙였다.
“안돼. 너까지. 고모도 독일 가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잖니.”
아버지는 펄펄 뛰며, 절대 못 간다고 못을 박았다.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유학비용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의 다른 표현이었다.
엄마는 내 공부가 길어지면 길수록 엄마의 꿈을 이룰 가능성이 커진다고 느꼈을까.
남자 형제들만 대학에 보낸 외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나에 대한 기대로 바뀌었다.
“로운아, 엄마가 너 시집갈 때 쓰려고 모은 거야. 네가 독일에 간다니, 이 돈 잘 쓰렴.”
엄마는 아버지 몰래, 내게 통장과 도장을 쥐여 주며 말했다. 엄마의 공부에 대한 열망은 우울증도 멈추지 못했다. 엄마 덕분에 독일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통계학’ 수업 때였다. 사회학과와 환경공학을 복수 전공하며 처음 듣게 된 수업이었다.
독일 남자들이 이렇게 득시글한 수업은 내 생애 처음이었을 것이다. 독일인들은 옆 사람이 북을 치든 장구를 치든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난 공기처럼 존재감이 없었다.
해감 안 한 조개를 먹는 것처럼, 입속 가득 모래가 차 있는 이물감을 느꼈다. 동급생들과 섞여 수업에 앉았다.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까만 눈동자와, 까만 머리는 충분히 시선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독일까지 날 따라온 수학 공식들과 계산 문제들 때문에 어질어질했다.
다른 과목은 혼자 해결했다. 독일 친구들에게 물어보든, 노트를 빌리든. 그런데 ‘통계학’ 수업은 친한 친구들도 쩔쩔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조교를 맡고 있는 독일 남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벤, 이 문제 어떻게 풀지?”
난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이거! 알려줄게!”
경쾌한 남부 사투리를 섞어가며 나를 가르치는 벤.
굵은 웨이브 파마에 어깨까지 내려뜨린 단발 갈색 머리가 자유롭고 개성 있어 보인다. 내가 의욕을 보이니, 벤 역시 기분 좋아 보인다.
“덕분에 이해했어. ‘곧 자이 당크’ (다행이다).”
"그 말이 한국에도 있니?”
가톨릭 신자인 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나에게 질문을 하는 벤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한국 여학생이 독일에서 통계학을 배우는 것이 신기했나 보다. 쉬는 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열심히 가르쳐 주는 벤이 고맙다. 통계학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하다.
이성적인 감정이 싹트는 순간이다. 상대방이 내가 모르는 분야를 잘 알고 있을 때. 내 어려움을 공감하고 도와줄 때 남자로 느껴진다. 지금처럼.
심지어 통계학 시간이 기다려진다.
전쟁터에서 사랑은 꽃피운다고 했나? 전쟁 중 군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 사진이 떠오른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진하게 느껴지는 전우애가 있다. 독일 동급생들도 줄줄이 사탕처럼 떨어지는 악명 높은 ‘통계학 시험’ 준비하며 사랑을 느낄 줄이야.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스승이나 마찬가지인 조교에게 관심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모르는 문제를 물어봐서, 한 번 더 귀엽고 하얀 얼굴을 보는 것뿐인데. 이 방법이 먹힐지 자신이 없다. ‘나 수포자요’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건데. 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한편으로는 통계학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내게 선택권은 많지 않았다.
멘자(학생 식당)에서 벤을 정면으로 마주할 일이 생겼다. 바로 수학 건물이다. 맛없는 멘자 중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던 곳이다.
벤이 혼자 앉아있는 곳으로 식판을 들고 걸어갔다.
“안녕? 옆에 앉아도 될까?”
벤이 나를 쳐다본다. 순간 숨이 막힐 것 같다.
“수학 문제 물어보려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이 말을 하려고 하는데 입속에서 말이 우물우물 씹히고 나오질 않는다. 벤이 의외의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
“.. 그럼! 맛있게 먹어!”
역시 자유로운 헤어스타일답게 툭,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넌 쌀밥이 주식이지?”
벤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나에게 묻는다.
“응. 그런데 우리는 찰진 쌀을 먹어. 찰기 없는 이런 쌀과 느낌이 달라. 쌀밥을 스테인리스 젓가락으로 떠먹을 수도 있어.”
“아, 정말? 스테인리스 젓가락 멋진데?”
벤이 의외의 주제에 관심을 보인다. 스테인리스 젓가락 이야기로 이성의 관심을 끌 수 있다니.
“나도 아시안 음식 좋아해. 그런데 항상 나무젓가락으로 먹지.”
“원한다면 내가 스테인리스로 된 한국식 젓가락 선물할 수 있어!”
벤이 관심을 보이자, 젓가락 선물로 마음을 보이고 말았다.
이미 뱉어놓은 말은 다시 돌릴 수 없다. 난 깨작깨작 찰기 없는 베트남 쌀알을 포크로 집어 먹었다.
“하하하 정말 고마워! 스테인리스 젓가락이라, 처음 듣는데 멋지다!”
벤은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잘했다. 좋은 건 좋다, 멋지다, 훌륭하다며 환호한다. 감정 표현을 이토록 잘하는 남자는 처음이다.
언제 젓가락을 전해주지?
젓가락 주겠다고 따로 만나자고 할 수도 없고,
“다음 달 엠티 갈 거니?”
벤이 묻는다.
맞다 엠티!!
“벤. 뭐 해? 밥 다 먹었어? 과제는 다 걷었어?”
벤에게 제메스터 파트에서 젓가락을 전해줄 상상을 했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훨훨 날아가고 있는데 옆에서 당찬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불안감을 감추며 얼굴을 들었다. 아뿔싸! 벤과 같이 조교를 맡고 있는 리자다. 베를린 출신, 170cm는 족히 넘는 늘씬하게 큰 키에 뿔테안경을 끼고 있다. 자신감이 넘치고, 학과 조교를 맡을 만큼 학업 실력도 출중하다. 벤과 함께 붙어 다닌다.
리자도 엠티에 갈 텐데. 별로 친하지 않고, 차갑게 구는 리자가 불편하다.
1+1도 아니고, 리자는 어떡하지?
또 다른 고민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