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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와 클레오파트라(4)

by 베를리너

미리암의 특별 요리를 보는 순간, 현란한 녹색이 눈을 사로잡아 당황했다. 난생처음 ‘아보카도’를 접한 데다, 아보카도가 빵 속에 끼워져 있는 걸 보니, 식욕을 저하하는 색감에 난감했다.

한입 먹어본다. 생각보다 부드럽고 잘 넘어간다. 탐험을 즐기는 편이지만, 먹는 분야는 제외였다. 이번 시도는 나쁘지 않다.

“클레오~ 이리 와.”

미리암의 집에 고양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레이더망을 켜고 있었다. 독일 고양이들은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을까?

클레오는 클레오파트라의 줄임말. 여왕의 자태로 침대 위에서 고고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너희들 하는 게 다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벤과 스터디하기로 한 거야?”

“벤이 그런 이야기까지 했다고? 난 몰랐는데”

벤이 스터지 제안했다고 말하자, 미리암이 놀란다.

“스터디하면서 천천히 알아봐. 슬로 슬로 퀵 퀵!”

아리송한 이야기를 한다. 벤이 나에게만 본인의 약점을 털어놓았다니, 그린라이트 아닐까?


“난 여기 사인 못 해!”

리자가 차갑게 말했다.

장학금 신청서 벤의 싸인 옆에, 두 번째 조교의 확인란에 리자는 사인을 거절한다.

더 큰일인 것은 리자의 연인으로 알려진 알렉산더 부교수의 사회 구조학 성적도 심상치 않다는 것. 리자와 연결하고 싶지 않지만, 안 좋은 생각은 개구리알 까듯 주렁주렁 다른 일들을 엮어버린다.

“이 점수와 과제로 정성 통계학 수업 가면 더 힘들어질 거야. 정량 통계학 수업을 확실히 해두면 너에게 더 편해.”

리자는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의 융통성도 보이지 않는 리자가 단지 내 앞길 가로막는 장애물로 보일 뿐.


통계학 시험이 코앞에 닥쳤다.

벤과 연습을 충분히 했었다. 벤이 친절하게 그림을 그려주며 설명할 때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진지하게 통계 문제 해답을 설명해 주는 그의 모습을 보니, 고맙기도 하고, 귀엽다.

독일인들은 일할 때 농담을 잘 안 한다. 평상시 가벼운 모습과 다르다.

“이제 알겠니? 혹시 더 궁금한 거 있어?”

“응, 잘 알겠어. 정말 고마워. 내가 뭐 보답할 건 없고, 차는 내가 살게.”

“하하, 그래”

“시험 볼 때 떨지 말고 차분하게 잘 봐.”

걱정 어린 내 표정을 놓치지 않았는지 벤이 한마디 덧붙인다.


왜 힘든 일은 항상 같이 올까?

이달 말까지 방을 비워줘야 한다. 며칠 전부터 학교와 신문에 방 구하는 정보를 열심히 찾아보는 중이다.

“언니, 방 알아보셨어요? 구동베를린에 괜찮은 방이 있다는데, 같이 보러 가실래요?”

눈치 빠른 성악도 현지가 묻는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구 동베를린이면 방세도 이쪽 구 서베를린 지역보단 쌀 거다. 초행이라 꺼려지긴 했는데, 현지와 함께 가니, 그것도 해결.

“방 좀 보러 들어가도 될까요?”

1층인데, 햇빛이 잘 안 들어 어둡다. 방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얼굴을 내민다.


Photographer: Rainer Rippe

사진 출처: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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