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9
1
J는 요리사 경력 동안 대부분 혼자 일했다.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나서 파리의 어느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북적이는 레스토랑에서 1년 반,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남동의 어느 작은 레스토랑에서 1년 남짓이 예외였다. 그 이후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주방에 들어가지도, 자신의 주방에 다른 사람을 들여보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홀로 요리를 했다.
물론 종종 홀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긴 했다. 처음 홍문동에 자신의 식당을 열었을 때의 테이블은 고작 네 개였고, 그 정도의 규모에서는 J 혼자 요리와 서빙, 계산까지 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뒤에 같은 골목 다른 곳으로 가게를 확장 이전할 때에는 테이블이 여덟 개가 되었고, 그는 요리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를 도와 서빙을 할 사람을 고용해야 했다. 하지만 보조 요리사를 고용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혼자 요리할 수 있는 규모 이상으로 식당을 확장하지 않았다. 다른 요리사들은 자신이 요리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 역시 다른 요리사들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J는 요리에 재능이 있었다. 무엇보다 맛이라는 개념을 본능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지금 만들고자 하는 요리의 맛이 하나의 이미지로 존재한다. 모양도, 색도 없다. 식감도, 뜨거움이나 차가움도, 심지어 짜거나 달거나 하는 미각과도 거리가 좀 있다. 순수한 추상적인 맛의 이미지이지만, 그럼에도 구체적이다. 한번 그 이미지가 명확하게 머릿속에 떠오르기만 하면 J는 별 다른 어려움 없이 그 이미지를 요리로 물화시킬 수 있었다. 이론과 기술이야 이미 르 꼬르동 블루와 그 뒤 몇 년의 보조 요리사 생활을 통해서 모자람 없이 습득했다. 그의 요리는 언제나 손님들을 감동시켰고, 그의 식당은 입소문 만으로 홍문동에서 제일가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그의 식당 입구에는 언제나 네댓 팀 이상의 손님들이 주린 배를 감싸 안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J에게도 어려운 것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머릿속에 요리의 상을 그려내는 것을 실패한다면 그 순간부터 그는 계란 프라이의 간도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종종 있었다. 괜찮을 때는 한 달 내내 상이 선명히 맺히다가도, 안 좋을 때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외에는 도저히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당연히 그의 식당은 갑작스레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람들은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린 다음에 다음날이나 다다음날에 다시 방문했지만,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될수록 손님들은 처음부터 다른 식당을 향했다. 그래도 5년 동안 한 자리에서 계속 요리를 했더니 사람들도 그런 식당의 별난 운영방식에 어느 정도 적응했고, 단골손님들도 많이 생겼다. 무엇보다 J의 음식은 확실히 맛이 있었다.
2
초여름의 어느 날 J는 통영의 양식업자에게서 직거래로 씨알이 크고 살이 잘 오른 굴을 많이 받아올 수 있었다. J는 그 굴을 손질하고, 다진 샬롯과 식초, 레몬주스에 소금 후추를 조금 넣어 미요네뜨 소스를 만들어서 특별 메뉴로 내놓을 생각이었다. 여느 때처럼 J의 머릿속에는 미요네뜨 소스를 곁들인 굴의 맛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굴의 손질을 끝내고 이제 막 소스를 만들기 위해 샬롯을 다지려는 순간, 갑자기 J의 머릿속이 비어버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올랐던 상이 사라지는 것은 그에게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오픈 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았고, 자신의 단골들에게 이미 오늘의 메뉴에 대해서도 공지했다. 그리고 자신의 주방 한편에는 많은 양의 손질된 굴이 손님의 혀의 미각 돌기들을 만족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영업을 안 할 경우 자신은 저 굴을 다 버려야 하고, 금전적 손실도 꽤 될 것이었지만, 그는 무엇보다 저 재료들이 아까웠다. 미요네뜨 소스야 눈 감고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쉬운데. 그것 하나 못할까 하는 생각에 J는 서둘러 샬롯을 작게 다지고 식초에 넣은 뒤 신선한 레몬을 골라 즙을 낸 다음 소금 적당량과 후추 적당량을 갈아 넣었다. 그 간단한 소스를 만들면서 족히 여섯 번은 넘게 맛을 보았다. 하지만 J에게는 항상 같은 맛처럼 느껴졌다. 레몬즙을 조금 더 넣어도, 소금을 한 꼬집 더 넣어도, 소스의 맛은 이상하게 변하지 않았다.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오픈 시간이 되고, 손님들이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J는 불안한 마음이 표정에서 드러나려 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손님들을 맞았다. 서빙을 하는 앳된 남자 직원이 자리를 안내하고, 물을 따르고 메뉴를 물어보는 동안 J는 얇은 얼음을 깐 볼 위에 굴을 플레이팅하고, 소스를 굴 위에 조금 뿌린 다음에 따로 작은 그릇에도 담아서 같이 올렸다.
그 날처럼 자신의 요리에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을 J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그들은 소스가 너무 시고, 짜고,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이라고 했다. 정중하게 굴을 물에 씻어서 다시 줄 수는 없냐고 물어본 손님도 있었다. 그는 손님들에게 몇 번이고 사죄했다. 음식 값은 하나도 받지 않았다. 그 뒤로 J의 식당은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닫혀있었다.
3
한 달 뒤에 J는 홀연히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식당에 나타났다. 단정하게 다듬은 짧은 머리 위에 하얀 조리모를 쓰고, 하얀 버튼다운 셔츠에 베이지색 치노 팬츠를 입고 쥐색의 앞치마를 겹쳐 입었다. 그리고 주방에 들어왔다.
다시 레스토랑을 열 생각은 아직 없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J는 아직도 자신의 잃어버린 능력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선명한 음식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상을 잃어버리는 일은 종종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길어봤자 하루 이틀이었다. 그래서 처음 일주일 동안 J는 무척 혼란스러웠고, 그다음 이주 동안은 잃어버린 능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여러 종류의 노력을 했다. 요리사 친구들, 자신의 르꼬르동 블루 스승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애초에 J는 그들과 같은 식으로 요리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J가 그래 왔던 것처럼 머릿속에 완벽한 맛의 상을 세워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아무도 J를 도와주지 못했다. 그들 중 몇몇은 샘통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J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을 닥치는 대로 만들어 보았다. 그리곤 그 요리들을 모두 조금씩 맛보아 봤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요리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수십 그릇의 요리들이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봉투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주 동안의 이런저런 노력은 모두 효과가 없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에서 맛을 느끼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끼니때가 되면 허기가 찾아오는 자신의 신체가 싫었다. J는 눈 앞에 보이는 식재료들을 사람이 소화시킬 수 있는 형태로 조리한 다음에 먹었다. 대부분의 경우 삶아 먹었다. 삶은 감자와 삶은 고구마, 삶은 쌀과 삶은 소고기, 삶은 당근과 삶은 콩나물.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있는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 이 덩어리들을 씹어 삼키면서 마지막 한 주동안 그는 끝을 모를 참담함을 느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화장실을 갔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J는 놀랐다. 수염이 거칠게 자라고, 오래 감지 않아서 기름진 머리가 번들거렸으며, 옷은 이런저런 요리의 흔적들로 거의 추상화 작품이 되어있었다. 퀭한 눈으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J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은 이제 사라져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배운 게 있고 경험이 있는데, 지금의 상황에 적응만 할 수 있다면 요리는 어떻게든 계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날 바로 단골 미용사에게 전화해서 약속을 잡고, 샤워와 면도를 한 다음 새로운 옷을 꺼내 다려 입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그는 마트에 들려서 마늘과 양파, 올리브유와 버터를 샀다. 베이커리에서는 바게트와 치아바타를 샀다. 밀가루와 파스타 면, 그 외 기본 조미료들은 식당에 넉넉히 남아있을 터였다. 일단 이 기본 재료들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연습을 해 볼 생각이었다. 집에서 하루에 여러 개의 음식을 만들어 볼 때와는 다른 접근이었다. 그때는 예전에 자신이 식당에서 줄곧 만들던, 재료가 다양하고 기법이 화려한, 각각의 요소들이 섬세하게 조화된 요리를 만들어보고자 했었다. 그러나 각각의 요리들에 대한 이미지를 잃어버린 탓에 언제나 실패였다. 이번에는 제일 간단한 요리부터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우선 J는 마늘을 다듬는 것부터 시작했다. 능숙하게 통을 쪽으로 나눈 다음 껍질을 벗긴다. 칼을 날카롭게 간 다음에 편으로 썬다. 순식간에 반 접의 마늘이 얇은 편 더미가 되었다. 주방에는 매운 마늘의 냄새가 가득 찼지만 J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칼질은 변함없이 정확하고 경쾌했다. 재료를 같은 크기로 써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작은 조각이 먼저 타버리거나, 큰 조각이 덜 익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J는 자신이 썰은 마늘 편들의 균일한 크기와 두께를 보며 그래도 자신의 손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다음에는 마늘로 할 수 있는 제일 간단한 요리부터 시작했다. 바게트를 어슷하게 자르고, 예열한 오븐에 노릇하게 굽는다. 딱딱하게 구워진 바게트의 표면에 마늘을 문질러 마늘향을 입힌 후, 올리브유를 뿌린다. 소금으로 간하고 파슬리를 뿌려 마무리한다. 실패하려고 해도 실패할 수가 없는 요리다. 하지만 J는 모든 단계에서 신중을 기했다. 바게트에 갈아 넣을 마늘의 양, 소금과 올리브와 파슬리의 양 하나하나까지 계량해서 사용했다. 요리를 마치는 데에는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J는 방금 만들어진 마늘빵을 손에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하나하나 구분해서 받아들여 보려고 노력한다. 올리브유에 적셔졌지만 빵은 아직 바삭하다. 물기가 없이 구워진 겉 조직이 입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속은 부드럽다. 마늘의 향은 강렬하다. 간이 되어 있고, 약하지만 파슬리의 향도 느껴진다. 하지만 여전히 이 모든 것들은 J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의 심상으로 뭉쳐지지 않았다. 레시피 대로, 용량과 순서를 지켜서 요리하면 마늘빵 정도야 팔 수 있을 퀄리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J가 지금까지 요리해왔던 방식과는 너무 달랐다.
다음으로는 조금 더 복잡한 요리에 도전해볼 차례였다. J는 찬장에서 잣과 호두를 찾았다. 신선한 바질은 자신의 식당 바로 옆에 있는 마트에서 구할 수 없어서 그는 대신 깻잎으로 페스토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처음 요리를 배울 때 적어놓았던 레시피 북의 용량대로 그는 재료를 계량한다. 정확한 양의 바질과 호두, 깻잎에 올리브유를 넣어서 믹서에 넣고 돌린다. 정확히 중간 모드에서 25초. 소금을 2 티스푼. 그다음에는 치즈를 넣을 차례다. 냉장고에서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찾았지만, 사면을 모두 잘라내니 쓸만했다. 강판에 간 치즈를 추가하여 넣고 다시 10초를 돌린다. 병입하고 올리브유를 넉넉히 부어 모든 재료가 잠기게 한 다음 냉장고에 넣어서 저온 숙성한다.
완성된 페스토는 그럴싸해 보인다. 한 티스푼 떠서 입에 물고, J는 이번에도 자신의 입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집중한다. 마늘과 잣과 깻잎과 치즈와 올리브유가 빅뱅 직후의 팽창하는 우주 속 입자들처럼 J의 입속에서 이리저리 날뛰며 충돌한다. J는 그 개별의 맛들을 도저히 하나로 묶어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이 재료의 맛들이 어떻게 조화되는지 알고 있다. 잣은 감칠맛을, 마늘은 매운맛을, 깻잎은 특유의 향을, 치즈는 풍부함과 질감을 담당한다. 이 모든 것을 묶어주는 것이 올리브유이다. 재료들을 잘게 다진 후 기름에 담금으로써 서로의 맛과 향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페스토의 공식이다. 만들기야 쉽지만, 정말 원하는 맛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각각의 재료들의 비율이나 입자의 굵기나 온도 같은 요소들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이 만드는 페스토는,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병입 된 이후에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수많은 다른 스파게티 소스들과 다를 바가 없는 기성품이 될 것이었다.
그는 마늘을 조금씩 더 넣어본다던지, 아니면 치즈를 조금 더 넣어본다던지 하는 식으로 재료의 양을 조절하며 계속해서 페스토의 맛을 봤지만, 맛이 변한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더 좋아지는 것인지 더 나빠지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방향이나 목표가 되는 기준이 머릿속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는 도저히 예전 같은 음식을 만들 수가 없었다. 소금 간이나 면의 삶은 정도 같은 것이야 용량이나 시간을 재서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먹을 만한 음식이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J가 아무런 노력 없이 만들었던 음식과 지금 그가 최선을 다해서 만드는 음식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컸다. 다 때려치우자고,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하는 부정적인 자신을 계속 억누르면서, J는 계속 다른 간단한 요리를 만들고, 그 음식을 맛보았다. 이전처럼 완벽한 맛의 이미지를 그려내지는 못하더라도, 흐릿한 해상도로 조악하게 완성된 모조품이라도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가질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요리는 항구에 묶여있는 배처럼 지루하게 멈춰있던지, 아니면 별빛과 등대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표류하는 배처럼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었다.
4
J가 양파수프를 만들기 위해서 한 망의 양파를 통째로 다듬어 크고 오목한 팬에 볶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면서 식당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한 달 전에 이 곳에서 서버로 일했던 앳된 청년이었다.
“앗, 역시! 캐러멜 라이즈 된 양파 냄새가 난다 했더니! “ 하고 청년이 쪼르르 주방 쪽으로 달려왔다. J가 주방 안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청년은 딱 경계에 섰다.
“연락드려도 답도 없으시고, 걱정했습니다” J는 그제야 자기가 핸드폰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 집 어딘가에 배터리가 떨어진 채로 나뒹굴고 있었으리라.
“아, 신경을 쓰지 못했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하고 J가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글서글하고 밝은 인상의 청년이다. 지금 보니 얼굴도 꽤 잘생기고 키도 컸다. 하지만 J는 이 청년과 딱 고용인과 피고용인, 혹은 주방 담당과 홀 담당의 관계 이상의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 그 청년은 말이 많은 편이었지만, 화제는 항상 별 시답잖은 것들이었다. 청년도 J도 자신에 대해서 별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상대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저야 뭐. 별 일 없죠. 아니 그것보다 손님들이 셰프님을 엄청 걱정했어요. 여기가 이렇게 오래 닫았던 적이 없었다고 다들 저한테, 셰프님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거 아니냐, 어디서 사고라도 당하신 거 아니냐, 아니면 집에서 시체로 누워있는 것 아니냐… 아, 아 이런, 죄송합니다.” 청년이 실수를 했다는 듯 당황하며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하고 J는 팬에 눌어붙으려고 하는 양파를 뒤적이며 대답했다. 충분히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저야말로, 갑자기 당일날 말씀드린 다음에 이렇게 오래 문 닫고 연락도 받지 않아서 미안하네요. 너무 갑작스러웠을 건데. 다른 일은 구하셨나요?”
청년은 과장된 포즈로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3달치 월급 한 번에 주셨는 걸요. 그리고 일은 새로 구하지 않았습니다. 셰프님이 다시 돌아오실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곧 다시 영업하시는 건가요?”
기대에 차서 물어보는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며 J가 대답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아예 쭉 문 닫을 수도 있고요.”
“아. 그렇군요." 청년은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다. J는 왜 이 청년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일에 신경을 쓰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카라멜라이징을 하기 위해서는 약한 불 위에서 끊임없이 계속 양파를 뒤적이며 볶아야 했다. J는 벌써 두 시간째 양파를 볶고 있었다. 천천히 양파에서 배어 나오는 수분이 증발되고, 양파는 황금색을 지나 이제는 어두운 갈색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적어도 한 시간은 더 볶아야 제대로 된 양파 수프를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청년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없었다. J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 왁자지껄한 소리가 문 밖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문이 열리면서 이번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을 J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적어도 3년 이상은 된 식당의 단골들이었다. 나이 때도 성별도 다양했다.
“셰프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다들 걱정하고 있었어요!”
“오가는 길에 매일 들여다봤었다고요!"
단골들이 모두 주방 쪽으로 걸어와서 J에게 말을 걸었다. J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 모두 잘 지내셨죠?”
“아 이 냄새는! 역시 양파수프다!” 하고 단골 한 명이 J의 등 뒤에서 졸여지고 있는 양파를 확인한 다음에 외쳤다.
“와, 난 여기서 먹었던 것만큼 맛있었던 양파수프를 먹어본 적이 없는데,” 하고 다른 단골손님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맞아. 저도 여기 와서 처음 먹어봤던 게 양파수프였어요. 정말 간단해 보이는 요린데, 맛이 너무, 음 그러니까 풍성하다고 해야 할까. 바게트랑, 치즈랑, 요렇게, 해서 푹 찍어서 돌돌 말아서 먹으면!”
“셰프님, 오늘부터 다시 문 여시나요? 지금 딱 저녁 시간인데!”
“그러니까 지금 양파수프를 만들고 있는 거 아닐까요?!" 단골들은 코를 킁킁거리고 입맛을 다시며 서로 대화했다. J는 한숨을 내쉬며 기대에 부풀어 있는 단골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5
어쩌다 보니 J의 이야기는 길어졌다. 지금이 양파수프를 만드는 과정 중에 제일 중요한 순간이었기에 그는 화구 앞에 서서 양파를 뒤적거리면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는지와, 갑자기 자신이 그러한 능력을 잃게 되었으며, 그 이유를 자신은 모르고, 따라서 자신은 이제 예전처럼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했다. J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양파는 완벽한 갈색으로 카라멜라이징 되었고, 그는 잠시 양해를 구한 뒤에 갈색으로 완성된 양파를 한 조각 집어 맛을 봤다. 양파의 달짝지근한 맛이 진하게 농축되었다. 식감은 부드러웠고, 점도는 질척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J은 양파가 제대로, 완벽하게 카라멜라이징 된 것인지를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요, 셰프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정말 이젠 요리를 못하시게 된 게 맞나요? 지금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는데요”
“맞아요, 저희도 그 양파 맛보고 싶은데. 저는 5년째 이 식당 단골이에요. 먹어본 양파수프도 100그릇은 될걸요? 혹시라도 저희가 셰프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J는 망설였다. 하지만 이판사판이었다. 자존심이고 무엇이고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떤 도움이든 받아들여야 했다. J가 고개를 끄덕이자, 단골들이 우르르 주방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혼자 식당을 개업한 후 처음으로 주방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것도 여섯 명이나 들어왔다. 신발은 흙투성이 었고, 아마도 손도 제대로 씻지 않았으리라.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J는 겨우 참았다. 단골들은 저마다 작은 스푼이나 포크를 들어, 다 볶아진 채로 팬 위에서 식고 있는 볶은 양파를 건저 먹었다.
“음, 정말 달콤해.”
“설탕을 하나도 치지 않아도 이렇게 달다니”
“너무 맛있는데? 집에서 나도 해보았지만 이렇게 잘 볶으려면 정말 오래도록 천천히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 탄 맛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이 사람 이거 뭘 좀 모르네, 원래 팬의 옆면이 살짝 탈 때까지 볶은 다음에 늘어 붙은 것을 디글레이징 해야 감칠맛이 사는 거야”
“아저씨 그거 인터넷에서 본거죠? 아니면 TV에서? 그런 거 다 정확한 거 아니에요”
“내 생각에는, 육수를 넣어 본 다음에 다시 맛을 봐야 하겠지만, 여기서 소금을 좀만 더 넣으면 단 맛이 확 달아오를 거 같아”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면, 저는 양파수프 좋긴 한데 조금 느끼할 때도 있어서, 여기다 그 페퍼론치노를 좀 넣어보면 어떨까요?”
“매운 양파 스프라, 그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
“셰프님, 이거 지금 너무 맛있어요. 여기에 닭 육수 넣고 빵이랑 치즈 얹어서 오븐에 돌리기만 하면 되잖아요!” “맞아, 이거 오늘 저희가 사 먹으면 안 될까요?”
J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단골손님들의 말 대로 양파수프는 이제 다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음 과정들은 너무나 쉽고 간단한 것들 뿐이었고, 따라서 망칠 위험도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J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자신의 요리를 다시 팔아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손님들의 눈망울이 너무나 글썽거렸다. 누군가의 뱃속에서부터 꼬르륵하는 소리도 터져 나왔다.
“자, 여러분. 와인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며 서빙을 하는 청년이 들어왔다. 양 손에 레드와인 두병씩이 들려있었다. “아쉽게도 여기 근처에서 사느라고 그렇게 맛있는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자리에는 와인이 빠질 수 없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렇게 되자 J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식당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6
J는 치킨스톡을 사용해 육수를 만들었다. 오븐 용기에 캐러멜 라이즈 된 양파와 육수를 함께 담은 다음 바게트 빵을 올리고 모차렐라 치즈를 올렸다. 그다음엔 180도의 오븐에 10분 구워 8인분의 양파수프를 만들었다. 청년은 테이블을 세팅하고 물과 와인을 서빙하고 음식을 날랐다. 손님들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지나가던 몇몇의 사람들도 식당에 손님들이 있는 것을 보고 들어왔다. 그들 모두가 단골이었다. 캐러멜 라이즈 된 양파는 산더미였고, J는 새로오는 손님들에게도 모두 양파수프를 대접했다. 대신 J는 음식값을 받지 않았다. 한사코 돈을 내려는 손님들에게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다시 문을 열 터이니 그때 자주 와달라고 말했다. J는 손님들에게, 오늘은 깜짝 이벤트 같은 것이며, 식당이 다시 쭉 문을 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모든 손님들이 이해한다며 자신이 이 동네에서 이사 가지 않는 한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식당은 북적였고 J는 정신없이 바빴다.
마지막 손님은 열 시 반이 넘어서야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다. 청년은 마감을 돕고는, 도와줄 게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앞으로도 더 한 달 정도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고 하고는 먼저 퇴근했다.
양파 껍질과 빵가루들이 가득한 텅 빈 주방에 서서 J는 그제야 허기를 느꼈다. 자신의 몫으로 남겨둔 한 그릇의 양파수프를 다시 한번 오븐에 데워서 허겁지겁 먹었다. 여전히 양파는 양파고, 닭 육수는 닭 육수였으며 빵은 빵이고 치즈는 치즈였다. 재료들의 맛들은 자신의 입 속에서 쉬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고, 지금 자신이 먹는 이 양파수프의 완성도가 얼마나 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 맛이 있었다.
빈 그릇을 개수대에 올려놓고 주방을 보니 바닥에 다른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이 가득했다. 그 발자국을 보며 J는 자신이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능력이 마치 치트키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요리나 맛의 완벽한 이상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다면 자신이 예전에 가졌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곰곰이 기억을 곱씹어 보았지만 예전에 자신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맺혔던 완벽한 맛의 이미지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은 어쩌면 요리를 너무 한 방향으로만 이해한 걸지도 몰랐다. 한 재료에 다른 재료를 더하고, 한 조리법에 다른 조리법을 더하고, 이렇게 하나씩 쌓아나가다 보면 완벽한 요리에는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맛있는 요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J는 했다. 그렇게 간단한 인자들이 쌓이고 쌓여, 변수를 만들다 보면 종종 더하기가 곱하기가 되어 간혹 엄청난 요리가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일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에게도 이제는 다른 변수가 필요했다.
J는 식당 전화기를 들어 예전에 레스토랑에서 주방 보조로 같이 일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야. 내가 주방에서 같이 일할 친구를 구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잘 모르겠어서 말이야. 요리사도 사람인에서 구하면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