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질이, 독일 개처럼 되어가다.

마지막 목욕한 날 2020년 10월 24일...

by Berlinerin

마지막으로 쇼코를 씻긴 것이 2020년 10월 24일이다. 남편이 10월 28일에 한국으로 4주 출장을 가게 되어서 가기 전에 씻겨주고 간 거라 정확히 기억한다.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 한 구석에는 반려견 샤워실(Hundedusche)이 있다. 별건 아니고 씻기기 편하게 높은 위치에 큰 세면대가 있고 왼쪽으로는 개들이 걸어서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이 있다. 소문에 의하면 이 아파트가 처음 지어질 때 가장 큰 펜트하우스를 산 사람이 큰 골든 레트리버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시공사가 만들어준 거라고... 덕분에 다른 입주자들도 개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네 집 욕실 하수구 막힐 걱정 없이 그곳에서 개를 씻길 수도 있고 혹여 길가다 개똥을 밟았을 때 집에 들어가기 전 들려서 신발을 닦을 수도 있다. 이 아파트에는 약 50가구가 살고 있고 내가 알기만도 개가 10마리 정도는 살고 있는데 지금껏(10년 전 이곳에 살았던 4년 동안에도) 단 한 번도 누군가 거기서 개를 씻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왜일까.

반려견 샤워장

왜냐, 독일 개들은 잘 안 씻는다.


물론 가끔 치와와같이 작은 견종을 반짝이 옷 입혀서 안고 다니는 예쁜 언니들도 종종 보이고 백화점 고급 반려견 용품 코너에 샴푸부터 시작해서 온갖 관리 용품을 팔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항상 향기 나게 자주 씻기는 주인들이 있다는 얘기 일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씻기면서 키우는 일은 거의 없다. 적어도 난 그런 주인을 아직 못 만나봤다. 독일 사람들에게 강아지를 깨끗하게 해 준다는 개념은 아마도 정기적으로 빗질을 해주고 혹여 호수에서 수영을 했다면 차에 태우기 전에 마른 수건으로 쓱쓱 닦아주는 것일 거다. 비가 자주 오는 나라라 웬만한 비에는 사람도 우산을 안 쓰는데 개들이라고 뭐 다를 게 있을까. 비에 쫄딱 젖어도 집에 들어오기 전 마른 수건으로 쓱쓱 닦아주면 또 끝이다. (비나 눈이 온다고 해서 산책을 거르는 일은 없다.) 사람들에게 개 언제 씻겼어?라고 물어보면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기억이 안 나서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호수에서 수영을 했거나 비를 맞았다면 털은 분명 다 젖어있을 것이다. 거기서 집까지 개를 안고 가지 않는 이상 개는 걸어가면서 젖은 털에 흙이며 나뭇잎이며 덕지덕지 붙을 것이다. 아.. 상상만 해도 너무 더럽지 않은가.

그루네발트에 있는 개 전용 호숫가

작년 여름 쇼코는 베를린 그루네발트(Grunewald)에 있는 개 전용 호숫가에서 처음 제대로 수영을 했다. 물속에서 쇼코의 세 가지 색 털이 우아하게 넘실거렸다. 그런데 물 밖으로 나오니 말 그대로 꼬질이... 작은 수건을 챙겨 오긴 했으나 털 부자라 별 도움도 안 되고 남편이랑 딸이랑 셋이서 차로 걸어가면서 저 꼬질이 어쩌냐, 물에 젖으니까 정말 웃기게 생겼네, 차는 어쩌냐, 가자마자 씻겨야 한다 등등 온갖 토론을 했다. Grunewald에서 우리 집까지는 차로 약 15분 정도 걸리는데 오는 동안 우린 좁은 차 안에서 개 비린내 + 물비린내의 환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씻기려고 보니 털은 다 말라있고 붙어있던 흙도 거의 다 떨어졌네?! 빗질을 해주니 그나마 붙어있던 흙도 다 떨어지고 다시 깨끗해졌다?! 냄새도 별로 안 나고 신기하다! 오! 안 그래도 피곤한데 다음에 씻기자.


쟤를 어쩌면 좋냐...

나 나름 깔끔한 성격이지만 한국에서도 쇼코를 그리 자주 씻기진 않았다. 보통 3-4 주에 한번 정도. 그것도 냄새나고 꼬질 해서 정 못 참을 것 같을 때까지 버티다가. 목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해주고 싶었고 잦은 목욕은 피부에 안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11킬로가 되는 녀석을 씻기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워낙 착하고 얌전해서 목욕하고 드라이하는 내내 싫으면서도 꾹 참고 반항 한번 없이 하라는 대로 하긴 하지만 무지 싫어하긴 했으니까. 또 목욕 후 뒤처리는 보통 일인가. 하수구 막히지 않게끔 손으로 빠져서 젖어 있는 털 다 버리면서 욕실 청소도 한번 싹 해야하고 썼던 수건도 따로 빨아야하고 털 말린 후 집안에 굴러다니는 털 뭉치 처리까지 정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몇 번은 반려견 샵에 목욕을 맡긴 적도 있었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달랐기에 그곳에서 목욕을 한 후 일주일 정도는 털이 눈부시게 윤기가 흐르고 계속 코를 박고 있고 싶게 만들 만큼 향기가 났었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목욕을 "당하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도저히 마음이 안 좋아서 맡길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3, 4주가 지나면 얘를 안 씻기고서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겠다고 느낄 정도로 개기름이 흐르고 꼬린내가 났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독일에 온 이후로는 애가 별로 안 꼬질 해진다?! 독일에 온 이후로는 배변도 집에서 전혀 안 해서 하루에 최소 4번씩 밖에 나가고 보통 4번 중 한 번은 거의 한 시간 정도 공원에 가서 흙길 밟고 물 밟고 잔디 밟고 배 깔고 엎드려있다가 오고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또 달라진 점이 눈곱이 적어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사레들린 듯 컹컹거리던 것도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로 줄어들었다.


남편과 나는 그 이유가 아마도 서울보다 깨끗한 공기와 자연일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똑같이 숨을 쉬고 흙을 밟고 비를 맞아도 그 안에 알 수 없는 유해물질이나 지저분한 것들이 적고 자연 그대로에 가까우니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무식한 추측을 해 보았다. 그러니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나와서 흙을 잔뜩 묻혀도 물기가 마르고 흙이 떨어지면 다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닐까.

내일이면 쇼코가 목욕을 안 한지 4개월을 넘어간다. 거의 7년을 키웠는데 그동안의 최장 기록이다. 흰색 털이 살짝 누레져 보이긴 하지만 다행히도 몸의 대부분이 검은색이다. 날이 덥지 않아서 그런가 아직 털이 떡지지도 않았고 냄새를 자세히 맡아보니 미역국 정도의 꼬순내가 난다. 아직 참을만하다! 좀 더 버텨보자!

IMG_0531.jpg 우아한 척 앉아있지만 너 엄청 꼬질한 거 엄마는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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