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라이프 8화. V에 대하여
V는 스물 다섯살짜리 독일 남자애다. 나보다 일곱살이나 어리지만 그와 나는 친구다. 우리는 한국어와 독일어를 섞어가며 대화한다. 아직 독일어 비중은 무척 작지만 말이다. 다행히 V가 지난 몇년 동안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된다. 그와의 대화는 내가 웬만한 한국 남자들과 나눴던 것보다 깊을 정도다.
V는 꽤나 똘똘한 아이다. 노벨 수상자를 숱하게 배출한 훔볼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약 한달 후면 미국 캘리포니아로 박사 과정을 밟으러 간다. 원래는 자기가 좋아하는 나라인 한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한국 교수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한국의 연구 환경보다 미국이 더 좋으니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라는 조언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방향을 틀었다.
V는 베를린 구석구석 나를 데려가줬다. 독일에 온 이후로 한번도 밤늦게 나간 적이 없던 나는, 그와 함께 어두워질 때까지 베를린 이곳저곳을 즐겼다. 집에 도착하면 그대로 뻗어버릴 만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젤라또와 맥주, 라멘과 햄버거, 공원과 마켓, 전시회와 소품샵, 슈프레강과 이스트사이드갤러리, 그리고 클럽 도전까지... (하필이면 그날 게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날이라 입장은 못했다)
V는 매번 데이트코스를 다 준비해왔고 나만의 맞춤형 가이드가 되어줬다. 헤어질 때면 다음 만남을 꼭 기약했고 나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려 했다. 늦은 밤 집앞까지 외부인이 오는 것이 부담스러워 극구 거절했지만, 어쩐지 나의 이십대 연애시절이 생각나 풋풋하기도 하고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는 "아쉽다"라는 말을 자주 내뱉었다. 나는 이제 막 베를린에 왔는데 자기는 곧 베를린을 떠나야 하니까.
V는 미국에 가지만 않았어도 나에게 고백할 기세였다. 문득문득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을 서글퍼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인 데다가 지금은 내가 누군가와 또다시 진심을 나누는 일이 버겁기 때문이다. 나이는 차치하더라도 유통기한이 확실한 만남에 마음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뻔히 상해버릴 관계가 되느니 좋은 우정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V는 어쩐지 나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나처럼 삼남매 중 둘째이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컸다. 부모님은 몇년 전 이혼하셨다며 지금은 두분 다 새로운 연인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보다 다섯살 많으셨던 어머니, 배다른 형제지만 우애 깊은 아티스트 형, 곧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르는 여동생. 그의 소개로 여동생은 실제로 만나봤는데 정말 사랑스럽고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V는 나이와 다르게 어른스러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저 어린 청년 같았다. 나에게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예쁘고 부유하고 능력이 있어서였다. 그와 같은 이십대의 나였다면 내심 기분이 좋았을 테지만 이젠 아니었다. 남들에게 인기가 많고 적은 게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겠거니와 그러한 조건들로 나의 존재 가치를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 워낙 예쁜 여자들 많아서 난 예쁜 편도 아니야. 그리고 내가 만약 지금의 모습이 아니어도, 돈이 없고 백수여도, 나는 나를 사랑해. 외모가 아름답지 않더라도, 집이 못 살아도, 커리어 타이틀이 없더라도 나는 그저 살아있는 자체만으로 소중한 존재야. 다른 사람의 기준은 내게 중요하지 않아. 나는 나를 존재만으로 사랑해" 칭찬 반, 플러팅 반 섞어 건넨 말에 반박으로 대꾸하는 나였다.
V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지 않으면 때때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특히 "남자는 쓸데가 있어야 한다"면서 결혼하면 재정적으로 든든하게 서포트해 줄 수 있는 남편과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모토는 해피 와이프, 해피 라이프(Happy Wife, Happy Life - 아내가 행복하면 인생이 행복하다)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책임과 희생을 회피하려고 하는데 보기 드문 마인드였다.
"훌륭하네. 너는 정말 멋진 남편, 아빠가 될 거야. 그런데 아주 만약에 네가 꼭 가족들을 기대만큼 서포트해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너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야. 그냥 너 자체로 말이야. 그렇더라도 너의 아내와 자식들은 언제나 너를 마음 깊이 사랑할 거야. 가족이니까." 나는 숙성되지 않은 V의 야망과 순수가 스스로를 가장 먼저 지켜주길 바랐다. 어쩌면 지난날의 내가 겹쳐 보여서였다.
V는 내게 언제 또 시간이 되는지 물었다. 여러 계획이 있다며 나와 함께 가고 싶은 장소를 이곳저곳 말했다. "독일 대표 맥주집 예약할까?" 그의 제안에 웃음이 터졌다. 이 맥주집은 진짜 술집이 아니라 베를린에 있는 국회의사당(Reichstagsgebäude)을 의미한다. 그가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단 말에 내가 맥주집이냐고 물어본 이후로 우리에겐 '독일 국회의사당 = 독일 대표 맥주집'이 됐다.
V는 서로 국적과 모국어가 달라도 속 깊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다.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앞으로 몇번이나 더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나눴던 베를린의 시작과 끝을 따뜻하게 간직해야겠다. "시간을 들여야 해... 시간이 필요한 일이야" V의 말대로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독일어를 습득해야겠다. 언젠가 나도 그처럼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