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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사이고 싶은 피동사 인생

독일라이프 22화. 코끼리 사슬 증후군

by 모모


정작 쓰고 싶은 말은 쓰지 못한다.

썼다가, 이내 지운다.

늘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했지만

실은, 나의 진짜 이야기는 적을 수 없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날은, 평생 꾹꾹 눌러담고 참아

짓이기고 어그러진 마음을 모조리 토해내고 싶다.

숨이 턱 막힌다.

베를린에 살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마치 날 위한 것 같은 어떤 말이나 행동은,

들여다보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불안이나 걱정을

속상하고 못 미더운 감정을

내게 툭 던지거나 배설하는, 아니

일방적으로 폭격하는 쪽에 가깝다.

사랑을 빙자한 심리적 지배와 주체성 박탈.

나는 왜 나를 버리면서까지

남에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어야 했나.

다른 그 누구보다 내가 내 인생을,

애틋해하고 행복하길 바라는데.

당신들의 몫을 한참 끌어안고 괴로워했다.

여전히 송두리째 뒤흔들린다. 피동사다.

잔혹하게 길들여진 아기 코끼리는, 시간이 흘러

이젠 무뎌질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어느 날에도,

아주 작은 자극에 스스로를 초단위로 죽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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