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명절의 추억릴적 명절의 추억
내일은 설이다. 폭설로 곳곳에 사고 소식이 전해져서 마음이 아프다.
나는 고향이 서울이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쯤엔 추석이나 설은 그저 즐기기만 하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큰아들이지만 할머니께서 시골에서 작은아버지랑 살고 계셔서 명절엔 시골로 내려가곤 했다.
그 시절엔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명절을 앞두고 경부선, 호남선 등 표를 구매할 수 있는 날이 정해졌다. 표를 구하기 위해 전날부터 기차역에서 밤샘하고 표를 구해야 했다. 표를 구하기 얼마나 힘들었냐면 암표 장사가 있을 정도였다.
용케 표를 구해도 시골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택배라는 편리한 시스템이 없었다. 그때는 우체국에서 소포라는 이름으로 물건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짐을 이고 지고 다니던 시절이다. 가뜩이나 복잡한 객실 안은 준비한 선물 보따리까지 보태져 더욱 복잡했다.
지금은 기차에서 서서 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땐 입석 표도 감지덕지다. 지금은 없어진 비둘기호, 그보다 좀 더 빠른 통일호를 이용했다. 무궁화호는 고급 기차에 속했다. 조금 과장하면 출퇴근 지하철 수준이었다. 겨울이었지만 사람들의 체온 때문에 덥고 공기는 탁했다. 심지어 객실에서 흡연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몇 시간 동안 담배 연기에 캑캑거리며 시골에 갔던 때가 떠오른다.
요즘은 자가용으로 많이 이동한다. 명절의 고속도로는 상행선과 하행선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그런 영상을 볼 때마다 고속도로 분리선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서 차선 변경을 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텅 빈 차로와 주차장이 된 차로를 보면서 우주도 날아가는데 왜 그런 그것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명절을 앞둔 시골 마당에 솥뚜껑을 뒤집어 걸고 전을 부친다. 무 조각이나 호박 꼭지로 기름이 골고루 묻을 수 있게 문지른다. 전거리가 올라간 솥뚜껑에서 지지직 기름에 익어가는 소리가 난다. 소리를 한번 냄새로 한번 유혹한다. 하지만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이라 먼저 시식하는 것은 안 된다. 어쩌다 운 좋게 배추전 한 쪽을 얻어먹으면 운수 대통이다.
지역마다 상차림이 다르다. 아버지 고향은 상주인데 내륙지방이라 그런지 상에 생선이라고는 조기와 마른 오징어가 전부였다. 결혼하고 전라도 시댁에 갔는데 처음보는 생선을 몇 가지씩 상에 올리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김에 기름과 소금을 발라 굽고 색색의 나물을 무치고 볶고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간 탕국도 끓인다. 돼지고기를 삶아 올리고 어릴 적 최애 음식인 요강 사탕과 젤리, 약과가 올라간다. 요즘엔 바나나, 수박, 딸기도 올리지만 예전에는 사과. 배. 곶감. 대추, 밤이 전부였다.
음식은 여자들의 몫이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밤을 쳐서 물에 담가 놓으시면 끝이었다.
차례가 끝나면 빙 둘러앉아 양푼에 여러 가지 나물을 넣고 밥을 비벼서 나눠 먹었다. 차례상에서 나온 물에 말은 밥도 꼭 먹어야 했다. 비빔밥을 먹고 나면 배가 너무 불렀다. 그래서 약과와 젤리 그리고 요강 사탕을 포기할 순 없다. 여러 가지 색소로 물을 들인 사탕을 먹고 나면 입안에 물이 들곤 했다.
상을 물리면 나이순으로 세배했다. 할머니께 제일 먼저 하고 아버지, 어머니,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순서로 세대를 했다, 오백 원, 천 원 많이 받으면 오천 원이었다. 지금 아이들은 그렇게 주면, 세뱃돈을 받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안 계시고 다들 손주까지 있다보니 한꺼번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결혼을 해 시댁에 하루 이틀 전에 가서 음식 장만을 하고 차례를 지낸다. 오랫동안 명절에 친정에 가는 것은 꿈도 못 꿨다. 다 그런 줄 알았다. 십 년 넘게 그렇게 했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여자들이 친정에 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명절 오후가 되면 시누이들이 시댁에 매번 왔었다. 그런데 왜 나는 친정 갈 생각을 못했을까? 손님이 많이 와서 하루 내 상을 내고 치고도 또 상을 내고 치우다 하루가 갔다. 얼마 전부터 명절 차례상을 물리고 친정엘 간다.
내일은 눈이 많이 온다는데 친정엘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시댁은 설에도 떡국을 하지 않는다. 친정에 가서 엄마가 끓여주시는 떡국을 한 그릇 먹고 나이도 한 살 먹고 올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