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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1 눈길 트라우마

눈길에서 한 번 애먹은 뒤로 눈길이 무서워요

by 다올

서남쪽으로 눈이 연일 내리고 있다. 섬마을에도 삼 일 동안 눈이 내리고 있다. 포슬포슬 예쁜 눈이 섬마을 곳곳에 소복소복 쌓여있다. 눈이 너무 와서 오늘은 일도 가지 못했다.


저녁 무렵 구내식당을 하는 이웃동생이 들러서 반찬을 가지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낮에 기온이 좀 올라가 눈이 녹기도 했고 제설 작업도 한 생태라 그럭저럭 운전을 할 수 있을 듯했다. 시동을 켜고 읍내를 향했다. 큰길이 있는데 늘 습관적으로 나니는 방향을 향했다. 차가 지나간 자리로 조심조심 운전을 했다. 아뿔싸! 낮은 언덕길에 군데군데 얼음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좁은 길 양옆엔 하얀 눈을 덮어쓴 대파들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겨울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낮은 언덕이어서 오르막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문제는 내리막길이었다. 응달이 진 곳이라 녹은 눈이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거의 속도를 줄이고 살짝살짝 내려갔다. 혹여 얼음을 타고 사고가 날까 무서웠다


작년 연말에 인천에 사는 아들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폭설이 쏟아졌다. 부여쯤 왔을 때 내기기 시작한 눈은 바람을 타고 앞 유리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바람 방향이 바뀌면서 눈이 옆으로 휘날리기도 했다. 그렇게 내린 눈은 순식간에 고속도로를 덮어 버렸다. 평소에는 종종 과속도 하는데 그날은 거북이 같이 운전을 했다. 눈길에 잘못 브레이크를 밟았다가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발은 점점 더 거세졌다. 가도 가도 집으로 가는 시간은 줄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속 30킬로 미터로 가고 있었다. 최대한 눈이 녹아 얼음이 된 곳을 피해 운전을 했다. 핸들을 잡은 손에는 힘이 가득 들어간다. 순간 차가 미끌했다. 브레이크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힘을 주고 핸들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차는 이리저리 제 맘대로 움직였다. 분리대를 스치면서 겨우 차가 멈췄다. 너무나 다행스럽게 뒤차의 안전거리가 충분한 상태였다. 내가 서도 뒤에서 따라오는 차는 제동을 하지 못할 테고 그러면 이중 상중 사고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해 준 차가 너무 고마웠다.


겨우 핸들을 조금씩 움직여 차선을 변경했다. 이차선엔 차들이 없었다. 가드레일에 부딪힌 후 속도는 더 줄었다. 시속 20Km로 갔다. 휴게소라도 들러 쉬고 싶었지만 휴게소 들어가는 길이 살짝 경사가 있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손은 내내 힘을 주어 저리기까지 했다. 내비게이션의 시간은 줄지도 않는 것 같았다. 가도 가도 집은 가까워지는 기미가 없다. 일 차선에서 나름 속도를 내고 가는 차들이 부러웠다. 아주 많이. 그렇게 속도를 낮추고 갔지만 이후로도 세 번 더 미끄러졌다. 차가 한 바퀴 돌고 반바퀴를 두 번 돌았다. 정말 너무 무섭기도 하고 사고로 이어지니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고 싶었나 보다.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기도가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나의 기도는

"제발 집에만 도착하게 해 주세요. 사고가 나더라도 저 혼다 나게 해 주세요." 단 두 마디 기도를 시간 동안 읆죠렸다. 입이 마르고 목이 탔다. 작은 생수물을 아껴먹으며 계속 기도를 했다. 나중엔 물도 떨어지고 목이 탔다.

'내비게이션이 고장 난 걸까?'

차밖을 보이는 풍경은 생경했다. 늘 다니는 길이 아닌 듯싶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혹시 지나친 건 아닐까? 이대로 해남까지 가면 어떡하지?'

머릿속은 복잡하고 속이 탔다.

'제발 제 앞에 트럭이나 버스 한 대만 세워주세요.'

큰 차가 눈 위를 지나 길을 만들어 주면 그나마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차선도 보이지 않고 하얀 눈이 쌓인 길이 무서웠다. 오 분쯤 지났을까? 정말 기적처럼 트레일러 하나가 내 차 앞으로 차선을 바꿨다. 하얀 눈 위로 검은 길이 두줄 났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란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제발 중간에 빠져나가지 않고 내 앞에서 길을 내주세요.'


터널도 여러 개 지났다. 터널 입구 쪽은 늘 조심해야 한다. 터널 안에서 꽉 잡은 손을 펼치고 털었다. 어깨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다. 아마 내일은 몸살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에서 잠시 몸에 긴장을 풀었다. 터널을 나오자 또 긴장모드. 이내 속도는 다시 시속 10Km. 그렇게 터널을 몇 개 지났다. 목포 도착 전 마지막 터널을 지나 입구로 나오자 허망했다.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목포에는 눈 한송이 내리지 않았다. 길을 깨끗했다. 내 바람대로 앞에서 달려주던 트레일러는 목포까지 나를 인도해 줬다. 마지막 터널을 통과하고 나도 모르게

"기사님 감사해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섬에는 눈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할까 봐 사고 났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난 사고니 말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한 번의 난관이 더 남았다. 7Km가 남는 바다 위의 다리 천사대교를 건너야 한다. 다리 위는 그냥 땅보다 얼음이 얼기 쉬워 위험하다. 다리의 길이도 길이지만 다리의 높이도 엄청나다. 다리를 건너는 내내 또 긴장해야 했다. 그 긴 다리를 건너고도 두 개의 다리를 더 건너야 했다.

우여곡절 끝내 집에 도착해 시동을 끄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펑펑. 마치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쏟아졌다. 그날 이후로 삼일동안 내내 눈이 내렸고 그 시간 동안 고립되어 있었다.


이렇게 식겁을 한 뒤로는 눈길 운전에 영 자신이 없어졌다. 2m도 안 되는 얼음도로도 무서웠다. 쫄보가 되었다. 식당에 도착해 동생이 주는 반찬이랑 어머니가 보내준 고기를 챙겨서 돌아왔다. 오는 길은 평평한 길을 선택해서 왔다. 곳곳에 얕은 웅덩이에 살얼음이 얼어있었다. 눈길 운전에 대한 트라우마가 쉽게 가실 것 같지는 않다. 강원도에서 살 때는 이보다 더 눈이 많이 내려도 운전을 잘했는데 하루저녁에 네 번이나 놀랐더니 눈길이 너무 무섭다. 앞으로도 눈 소식이 예보되어 있다. 부디 모든 분들이 안전 운전하시고 인명피해가 없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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