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를 했다.
01.
늘 가는 병원은 모교 병원이다.
갈때마다 비효율적인 건물 구조를 욕하지만, 그날은 더더욱 분노했다.
어찌하여, 뼈가 부러지거나 관절이 불편한, 즉 기동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가는 정형외과가 굽이굽이 꺾어서 들어가야 하는 1층 구석진 곳에 있으며, 깁스를 하는 캐스터실이 5층에 있을 수가 있는가?
건물 배치도를 보면서, 정말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02.
예전에 본, 장애인여행콘텐츠 제작 협동조합 '무의'와 계원예대 대학생들이 만든 장애인을 위한 '지하철 환승지도'가 생각났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환승을 하기에는, 너무 멀고, 좁고, 정보도 없다. 서비스디자인과 현장리서치를 통해 지하철 역마다 환승하는 방법을 적은 환승지도를 만들었다.
사회가 '정상인은 이러해'라는 must image를 세워놓아서, 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사람들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불편을 겪는지조차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간이나 정도가 아주 짧고 적더라도.
관련 뉴스: http://mhooc.heraldcorp.com/view.php?ud=20170210000729
지하철 환승지도: https://www.wearemuui.com/kr/specialproject/
03.
넘어진 시간은 저녁 여덟 시였다. 이미 병원은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야 회복되는 인대, 병원을 간다고 해서 나아질것 같지 않았다.
응급실은 더더욱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또는 가족들이 아파서 응급실에 가면 항상 환자 취급도 받지 못하고 '시간 지나면 나아요~', '다른 환자분이 더 급해서요~'하면서 방치되어 병이 악화된 기억 때문이었다.
04.
그 와중에도, 휴가 내기가 아까워서 다음날 휴가를 쓸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05.
어떤 종류이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찌 걷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경험이 하나도 없는 나에게 인사담당자분은 굉장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셨고, 병가에 필요한 것들도 자세히 알려주셨다.
처음으로, 회사가 큰 조직이어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많고 하는일이 많고 규모가 크니까, 아프면 이렇게 이렇게 한다 하는 규정도 있고, 담당자도 있고, 퇴근길에 일어난 일이어서 회사에서 책임져주는 부분도 있었다. '다쳐도 눈치가 보여서 회사에 나가야 하고, 인대는 너덜너덜해진다!' 또는 '다치면 회사에 못 나가고, 그러면 월급이 반토막이 난다!' 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마라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먹으러 갈 수가 없어서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