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준령을 따라 남으로 뻗은 산록이 끝나는 언저리에 별교가 앉아 있다. 좌우 진영의 이데올로기에 흔들거리며 숱한 비극이 되풀이되던 시절이 흔적처럼 남아 있는 곳, 한때 4만 명을 헤아리던 고을이 현재는 1만 명도 안 되는 소읍이지만 무심한 시간들을 껴안고 그저 심심찮게 오가는 길손을 맞이한다.
태풍 접근의 영향을 받아 강풍을 등에 업은 빗줄기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떠난 날의 오후,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에 들려 6년간 정신없이 써내려 간 대하소설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데, 어쩌다 그 서적이 이적으로 몰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것은 또 하나의 동족상잔의 비극의 모습이 아닐 수 없음이리라.
조정래 태백산맥의 배경 중 하나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 보성여관
애잔한 마음을 안고 녹차밭으로 유명한 보성군의 벌교읍내 정도가(鄭都家)에서 꼬막정식을 한상 받은 뒤,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성여관> 1층의 개조된 찻집에서 차 한잔을 주문한다.
여관 이층에는 미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길게 이어진 방들 네 칸을 터놓은 다다미방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자니, 문득 윤동주 시인이 시가 쉽게 쓰여 부끄러운 생각을 갖게 했다는 그 시가 떠올랐다.
아무튼,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의 탈고를 끝내고 새로운 강나루에서 <아리랑> 집필에 나서게 된 소명을 접할 수 있는 실마리를 벌교에서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복합적 연결고리들을 통하여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임을, 또한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며 진행되는 것임을 느끼며 윤동주 시를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