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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집주인의 횡포

by 베존더스

새집으로 이사 온 지 4개월이나 지났지만 전에 살던 월셋집 주인은 여전히 우리에게 금전을 요구한다. 우린 7월 초, 10년 살던 월세 집을 나왔다. 한 달 전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벽지와 바닥 공사 견적을 위해 담당자를 보냈다고 비용은 반반 부담하자고 했다. 어렸던 삼 남매를 10년간 키우며 벽에 낙서 흔적이 많았다. 원목 바닥 역시 상했다. 당연히 원상복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보름쯤 지나 견적서를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반반 부담하기로 했던 집주인의 비용의

10%만 지불하고 나머지 90%를 우리에게 요구했다. 공사 비용은 터무니없었다. 그는 집을 싹 고칠 심사였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자면 천만 원에 가까웠다.


보증금을 빼고도 천만 원이라니 우린 부당했다. 견적서를 들고 변호사를 찾아갔다. 변호사는 바뀐 독일법으로 세입자가 원상복구 의무는 없다고 했다. 다만 암묵적으로 벽지 정도는 하고 나온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집주인이 견적 낸 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 여러 곳에 문의해서 견적을 받았다. 집주인이 요구한 가격의 반의반 가격이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우린 당신의 의견을 따를 수 없다고. 집주인은 너희가 알아본 업체를 믿을 수 없다며 굽히지 않았다. ‘외국인으로 약 잡아 본 건가? 아님 새 집 지어 이사 가니 돈이 많다고 여겨서 뭐라도 더 얻어내려는 건가?’ 화가 치밀어 오른 얼굴은 화끈거렸다.


고민으로 미간의 주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우리가 월셋집에 처음 들어갈 때 집주인은 오래 살길 바랐다. 그의 원대로 우린 10년 살면서 월세 한번 밀린 적 없었다. 우리가 벽지, 바닥 작업도 업체를 통해서 원상복구 한다고 신사적으로 말했는데. 돌아오는 건 스크루지 심보를 가진 집주인의 욕심뿐이었다. 집주인과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우린 집에서 나왔다. 휴가를 떠난 집주인은 자신의 딸에게 열쇠를 전해주라 했다. 그로부터 14일이 지난 어느 날 새벽 4시에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밑에 사는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위에서 물이 샌다며 열쇠를 가지고 있냐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미 이사할 때 열쇠를 반납했기에 도와줄 수 없었다.


워낙 친했던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라 남 일 같지 않았다. 할머니 건강이 좋지 않은 터라 더 걱정됐다. 남편과 함께 이웃집에 찾아갔다. 천장의 벽지는 다 뜯어졌고 물이 흘렀던 천장에는 노란 얼룩으로 둬 덮였다. 걱정하는 우리를 바라본 할아버지는 너희 잘못이 아니라며 다독여줬다. 너희는 이미 떠난 지 14일 후의 일이었고, 휴가 중인 집주인이 관리하지 않은 잘못이라고 했다. 휴가지에서 돌아오지도 않은 집주인은 이메일로 연락 왔다. 밑에 집 천장 수리비까지 청구하며 7월 세입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월세도 함께 보내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사정을 알게 된 지인이 나섰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2세로 남편은 독일 사람이었고, 남편 친구는 변호사였기에 법적으로 집주인에게 접근했다. 의무는 아니지만 벽지 작업은 우리가 알아본 업체에 문의해서 작업을 진행시켰다. 벽지 작업이 끝나니 집주인은 바닥 수리비, 7월에서 10월까지의 월세를 요구했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니 집주인은 소송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우린 상관없었다. 법으로 불리한 쪽은 우리가 아닌 집주인이었다. 소송까지 가서 승소할 수 없다는 걸 집주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겁만 주는 꼴이었다. 처음부터 신사적으로 반반 부담만 했어도 우린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10년 살며 좋았던 추억은 산산조각이 나고 그 자리에 집주인에 대한 미움으로 찼다. 우린 변호사에게 위임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올해가 가기 전 해결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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