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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Jan 29. 2022

독일에서는 꼬마도 내 이름을 부른다.

해외에 살며 겪는 어려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그 문제는 더  해진다. 남편과 나는 20대 초반에 부푼 꿈을 안고 음악의 나라 독일에 공부하러 왔다. 20대 젊음을 독일에서 보냈다. 우린 선택해서 왔지만 우리에 의해 태어난 삼 남매는 한국인도 아닌 독일인도 아닌 존재로 살아간다. 어려서부터 공교육을 받으며 자라나는 삼 남매는 겉모습만 한국인이지 내면은 독일인이다. 유교사상으로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한국에서 20년을 자란 나와 남편은 어른들께 예의를 다하며, 겸손을 미덕으로 여긴다. ‘어른들에게 예의와 겸손을 표현하도록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가르친다.’


독일에서는 엄마, 할머니를 부르기도 하지만 엄마 대신에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둘째가 유치원에 다녔을 때였다. 둘째의 친한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그 꼬마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할로, 신혜 잘 지냈어?" 라며 인사를 건 냈다. 둘째의 눈이 왕 구슬만큼 커졌다. 엄마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그리고 엄마의 친구들뿐이었다. 자기 친구가 엄마의 친구 마냥 이름을 부르는 것에 놀라 했다. 친한 사이일수록 나이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는 게 이들 문화이며 애정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 꼬마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당혹스럽다. ‘정감 있는 한국말 아줌마는 독일에 왜 없을까?’


독일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이름을 서슴없이 부르는 것처럼 어른에게도 자기 의견을 조리 있게 잘 말한다. 어느 날은 첫째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첫째는 "엄마, 친구가 엄마와 이야기하는데 어른 대 어른 같았어"라는 말에 내 눈은 갈 길을 잃은 듯 흔들렸다. 내 어린 시절에는 아이가 어른의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자기 의견을 말하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했다.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야 했다. 그랬기에 첫애의 어른 대 어른이란 말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친구가 엄마와 대화하는 모습 속에서 새로운 이면을 알게 된 만 11살 첫째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점점 자란다. 집에서 한국 문화 속에만 있던 아이들은 유치원, 학교를 다니며 독일 문화에 자연히 스며든다.


나의 고민은 더해간다. 어느 날은 첫째가 쿵후를 배우는 친구에게 맞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모습에 울컥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얼마나 아팠을까?’ 둘이 놀다가 의견 차이로 그 친구가 분에 못 이겨 때렸다고 했다. “넌 어떻게 했어?” “참았어, 엄마가 때린다고 너도 똑같이 하지 말라 고해서...”라는 아이의 말에 어깨에 무거운 돌을 매단 듯 축 늘어졌다. 독일은 상대방이 때리면 같이 때리라 가르친다. 맞대응 하지 못 하면 약자로 본다. 나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대화로 풀어가라고 말한다. '독일 문화에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너도 같이 싸워라는 게 맞는 것일까?’ 여전히 내겐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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