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나는 외국인이다. 이미 성인이 되어 독일에 온 나는 독일의 초등학교 문화를 모른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나도 처음으로 독일에서 학부모 생활을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나도 적응했다. 첫째가 입학할 때 전교생에서 동양인은 딱 둘이었다. 한국인인 아들과 중국인 남자아이였다. 독일인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가뜩이나 독보적인 외모인데 학교생활을 잘하지 못해 눈총 받으면 어쩌나 마음 졸였다.
입학 전 학교에서 받은 입학 준비물을 읽고 또 읽으며 꼼꼼히 준비했다. 심지어는 독일 아이들이 많이 쓴다는 물감, 색연필 상표가 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샀다. 책가방은 한정판으로 구입했다. 독일 아이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내가 외국인 엄마여서 못 챙겨주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입학식 때 엄마들은 이미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독일은 대부분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 같은 유치원, 초등학교를 입학한다. 그러니 이미 같은 동네에서 유치원을 다닌 아이들과 엄마들은 친분이 있었다. 우리는 예외였다. 남편과 나는 대학시절을 독일에서 보냈다. 남편이 학교를 졸업하고 오페라극장에 취직하면서 이사했다. 첫 아이가 한 살 때였다. 사회 초년생인 아빠, 엄마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심지어는 육아 동지도 없었으니 조언을 얻을 때가 없었다.
아이가 자라기에 좋은 주변 환경인지 아닌지 잘 몰랐다. 집 근처의 초등학교의 선생님이 어떤지, 학교 분위기는 어떤지, 같은 동네의 아이들은 어떤지 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알게 됐다. 우리가 무지했구나.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주고 싶어 이사를 결정했다.
이왕이면 독일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가고 싶었다. 둘째까지 다닐 초등학교였다. 꼼꼼히 알아보며 초등학교 근처로 이사했다. 예전 살던 집과는 거리가 있었다. 첫째 아이는 유치원 친구와 떨어져 초등학교에 홀로 입학했다. 외로웠다. 아이의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 같은 반 친구 엄마와 친해져야 했다. 수영, 축구, 피아노 수업에 대한 정보를 얻고, 함께 다닌다면 아이들끼리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셋째를 임신해 남산만 한 배로 둘째 손을 잡고 첫애를 매일 학교에 데려다줬다. 난 눈도장을 열심히 찍으며 교문 앞의 엄마들과 인사를 나눴다.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지만 난 전형적인 한국 엄마였다. 극성맞게 아이를 위해 찾아다니고 쫓아다녔다. 하지만 난 독일 엄마처럼 독일의 문화,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화가 달라 받는 오해도 있었다. 독일은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이다. 첫째 아이 때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담임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드렸다. 독일은 크리스마스 선물, 생일선물, 감사를 표현하는 선물을 마음과 정성을 담아 작게 준비한다. 그랬기에 선생님께 준비한 선물 또한 비싸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향초였는데, 학교서 돌아온 아이 손에 선물이 그대로 들려있었다. “선생님 주지 않고 가져왔어?” “선생님이 받으면 안 된대.” 마음이 복잡했다. 이유가 뭘까? 무안했을 아이 마음도 신경 쓰였다. 유치원 때에는 작은 선물을 선생님께 드려도 받았었는데. 학교는 뭐가 다른 걸까? 혼자 고민하다가 이미 아이를 키워낸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독일도 한국처럼 김영란법이란 게 있어 그래서 받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했다. 부끄러웠다.
다음 해 크리스마스가 되어서야 알았다. 학급 엄마들이 소량의 돈을 모은다는 걸. 학급의 대표 엄마가 모아진 돈으로 선물을 준비했다. 대표 엄마는 예쁜 카드에 아이들 이름을 적었다. 선물과 함께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이 작은 부분조차 나만 몰랐다.
우리 아이들은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집에서 한국어를 쓰는 시간이 많다. 두 가지 언어는 언제나 고민이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외국인 가정도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아무래도 독일 가정의 아이들보다 독일어가 부족하다. 난 우리 아이들의 부족한 언어를 조금이라도 채워주기 위해 때마다 읽어야 할 책을 준비해 주었다. 아이들이 손쉽게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독일어 책을 두었다. 식탁 위에, 책상 위에, 소파 옆 테이블 위에 심지어는 거실 바닥에도 책을 놓았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졌다. 책에 관심을 보이는 둘째를 위해 그 나이 때에 접해야 하는 책, 그리고 Höcherbuch (회어부흐) 듣는 책을 사서 시디플레이어에 넣고 틀어준다. 펜을 가져다 대면 읽어 주는 책은 연령별로 구비해 두었다.
첫째 때는 많이 활용되지 못했지만 둘째 때부터는 십분 활용 중이다. 작년 가을에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형이 1학년 때 읽던 책들을 물려받았다. 1학년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은 글씨 중간중간에 그림이 들어가 있다. 독일어를 잘 몰라도 읽을 수 있다. 그림의 단어들을 말하며 읽어나가는 방식이다.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디어가 좋다. 첫째를 위해 노력했던 것이 둘째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민다. 둘째를 따라 하는 셋째에게도 좋은 영양분이 된다. 때마다 읽어야 할 책을 준비하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독일에 사는 한국 아이들에게 두 개의 언어는 항상 고민이다. 터키, 독일인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의 학부형이 있다. 내 고민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아이들이 어려서 힘들지만 분명 커서는 두 가지 언어를 잘하게 될 거라고 나를 격려해주었다. 혼자 외국인 엄마로 고군분투한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마음 따뜻한 학부형도 있다는 것에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