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사물: 작두콩>
작두콩을 갈라보았다
길고 두터운 꼬투리가
바깥의 무게를 막아온 모양이다
안쪽에는
흰 섬유질이 겹겹이 깔려 있다
누구라도 다치지 말라고
이불을 포개놓은 손길이다
사이사이로
콩알들이 반듯하게 누워 있다
아직 세상에 나가보지 않은 것들이
온순함을 먼저 배운다
가지런한 배열을 보며
내 안의 오래된 숨도
이렇게 누워 있겠구나
지금껏 살면서
말 한 번 크게 하지 않고
제자리에 눕혀져 있는 숨 하나쯤
겹겹이 나를 덮어 온 것들보다
가장 오래 눌러온 것도
결국 나였다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16)
여름 내, 비염이 사그라들지 않는 걸 본 사랑하는 벗이 작두콩을 보내왔다.
껍질은 차로 우려 마시면 좋다며, 작두콩의 쓰임새를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처음 작두콩을 보았다.
어마하게 크고 두꺼운 꼬투리가 믿기지 않아 한참을 손에 쥐고 있었다.
칼질을 몇 번씩 해대며 꼬투리를 열어보니, 하얗게 겹쳐진 섬유질과 정돈된 질서들이 놀라웠다.
벗이 보내 준 작두콩 하나에
요즘 많은 생각을 말하고, 듣고, 나누고, 쓰고, 표현하고 있다.
진실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벗 되어 머물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밝고 환한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대문 사진. pixabay.
본문 사진. by mocale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