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벌과 함께

꿀벌 습격 사건

by 김삐끗

어느 나라든 공원에 가면 마치 내가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인 듯한 기분이 든다.

유명한 공원이라면 관광객이 많겠지만 대부분 공원은 현지 사람들이 일상을 즐기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현지인의 생활과 이방인의 관광 그 사이 어딘가를 추구하는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공원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뉴욕은 대도시 안에 작은 숲, 센트럴파크가 있었다.


사방에 산이 깔려 있는 우리나라는 수도인 서울에서도 녹지를 보기 쉽다.

뉴욕은 서울과 달랐는데 녹지라고는 건물 앞 가로수가 전부였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해 센트럴파크를 만들었다는데 현명하다 못해 없으면 어쩔뻔했나 싶었다. 잠깐 머물다가는 나도 이리저리 솟아있는 건물들을 그만 보고 싶고, 눈을 좀 정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센트럴파크는 걷기만 해도 좋지만 우리는 각자 센트럴파크에서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나는 공원만 가면 그렇게 돗자리 깔고 도시락을 먹고 싶어 했고,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다. 뉴욕에서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센트럴파크를 200% 즐기기 위해 각종 꿀팁을 섭렵했으며 지도를 꼼꼼하게 확인하며 동선을 짰다.


가기 전부터 센트럴파크에서 도시락을 먹기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돗자리를 알아보느라 가기도 전에 진이 빠졌다. 결국 저렴이를 모아 놓은 가게에서 방수천 형식의 돗자리를 사면서 로망 실현 준비가 끝났다. 이제 푸르른 잔디밭에 이걸 깔기만 하면 내 로망이 실현될 것이다.


첫 방문 때는 하늘이 뻥 뚫린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베이글 하나 물고 아메리카노를 멋들어지게 홀짝이는 걸 상상했지만 실상은 밀가루에 지쳐 일식집에서 초밥을 포장해 왔다. 후식으로 먹을 르뱅쿠키까지 돗자리 위에 먹을 준비를 마쳤는데 난데없이 벌이 날아들었다. 윙윙거리며 위협적으로 날아와서는 우리의 초밥과 르뱅쿠키를 노렸다.

남편은 벌레를 극도로 무서워해서 벌의 위협적인 날개짓에 으악! 소리를 지르며 저 멀찍이 달아났다. 나도 벌레를 무서워했지만 우리의 소중한 초밥과 쿠키를 지키기 위해 일단 필사적으로 뚜껑을 닫았다.


파리였으면 냅다 손을 휘저어 쫓아냈을 텐데 벌이라 손짓이 소심해졌다. 르뱅쿠키의 단내가 벌을 꼬이게 하는 것 같아 일단 쿠키만 덮어 두고 사방을 경계하며 초밥을 조심스럽게 먹었다. 나중에는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한 마리였던 벌이 두 마리가 되면서 더욱더 위협적으로 윙윙거렸다. 벌이 날아드는 걸 피하다가 돗자리에 간장을 쏟았고, 여유 있게 도시락을 먹는 장면 대신 허둥대면서 초밥을 빠르게 먹어 치우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 내 로망이.


다음에 올 때는 벌레 없는 곳으로 가야지 다짐했다.

그런데 벌레 없는 곳이란 있을 수 없었다. 사방이 풀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쓰레기통에 버린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여기 저기 벌들이 꼬여 있었다.


며칠 뒤 다시 한번 센트럴파크에 가서 두 번째 도시락 까먹기 작전을 시도했다. 기대하던 할랄가이즈에서 음식을 포장해 와 운치 있는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았다.

우리가 고른 자리는 풀숲 사이로 신혼부부가 웨딩사진을 찍고 있었고,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과 강아지까지 한가로운 평화를 자아내는 완벽한 장면이었다.

흥분되는 마음으로 음식의 포장을 풀었는데 또 우리 왔다고 소문이 났는지 벌이 날아들었다. 이런. 곤충을 무서워하는 남편과 나는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순식간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벌의 습격'이라는 제목을 단 스릴러 영화로 바뀌었다. 벌 눈치를 보면서 재빨리 한 숟가락 먹고 뚜껑 닫고, 또 한 숟가락 먹고 뚜껑 닫고를 반복하며 바짝 긴장한 채로 식사를 겨우 마무리했다. 그러느라 기대했던 음식이 무슨 맛인지 느끼기 어려웠다. 자리를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음식을 다 풀어헤쳐놔서 이동하기도 애매했다.


두 번의 꿀벌 습격사건 이후로 더 이상 센트럴파크에서 음식을 먹을 엄두가 안 났다.

남편의 바람이었던 자전거를 타며 벌 친구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발을 굴렀다.

도망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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