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국내 시중은행 한 곳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했다.
표면적인 피해는 크지 않았다. 일부 계좌의 접근 기록이 비정상적으로 감지됐고, 소액의 자금 이동이 있었다는 정도였다.
은행은 신속히 시스템을 복구했고, 언론은 이를 ‘차단에 성공한 침입 시도’ 정도로 간단히 보도했다.
그러나, 나는 그 기사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정보사의 블랙요원이 금융 해킹 사건에 개입할 일은 없다. 업무 관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나는 기사의 내용을 몇 번이고 읽어내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은행은 과거 잠복 작전을 수행하면서, 내 이름으로 개설된 위장 계좌가 있는 곳이었다.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사를 처음 본 순간, 익숙한 감각이 작동했다.
직감.
오랜 시간 현장에서 체화된 감각은, 종종 분석보다 먼저 움직인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지만, 그 안에 어떤 흐름이 있다는 느낌.
표면 아래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기척이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 기사는 뉴스 포털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중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건·사고는 매일 벌어지고, 사람들의 기억은 짧다.
하지만 기사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웠다는 뜻이다.
이상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인을 통해 조용히 해당 은행의 내부 상황을 들여다본 결과,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보안 책임자급 인사들이 중국 금융계와 비공식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해외 기술 교류, 투자 협력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제 회의 내용에는 내부 시스템 구조나 접근 권한, 계정 인증 체계까지 포함된 문서가 오갔다.
이건 협력이 아니라, 열람 허용에 가까웠다.
한국의 금융 시스템을 우회적으로 해석하고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에게 넘긴다는 건,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급 비밀로 분류된 작전 지시가 하달됐다.
암호명 없는, 코드번호로만 표기된 임무.
내용은 간결했다.
“국내 주요 민간기업에 침투 중인 외부 세력의 실체 파악 및 필요시 차단.”
핵심 대상은 ‘금융’, 그리고 ‘정보통신’ 분야.
서류 말미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즉, 내가 투입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다시 블랙요원으로 임무에 투입됐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이름도 얼굴도 남기지 않고 움직이는 방식.
소속도 없고, 흔적도 남기지 않는 작전.
중국.
이 나라는 내게 단순한 외교 상대가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침투와 간섭을 시도한 존재,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치밀하게 움직이는 상대.
과거에는 국경을 넘어 말을 몰았고, 지금은 네트워크를 넘어 데이터를 침투시킨다.
한때는 군사력으로, 지금은 기술과 자본, 화폐와 정보, 사람과 조직으로 이 땅을 흔들고 있다.
그리고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그 위협에 대해 충분히 대비돼 있지 않다.
보안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3년 전의 그 사건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지워진 뉴스와 묘한 감각.
그리고 그때 내가 남겨둔 작은 위장 계좌 하나.
그 계좌와 백준기라는 이름이 지금 다시 엮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도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소설:큐비트 프로토콜] 13. 너무 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