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세계에서 ‘변수’란 흔한 단어다.
문제는, 예상 가능한 변수는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 변수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하나의 변수를 마주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나는 중국계 스파이 조직의 국내 활동을 조용히 추적해왔다.
파편처럼 흩어진 단서들은 대체로 비슷한 궤적을 따랐다.
경제협력, 기술 교류, 투자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꾸준히, 그러나 은밀하게 진입로를 넓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그 흐름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든 정보조직은 존재한다.
우리도 중국에도, 미국에도, 일본에도 요원을 침투시킨다.
이는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닌, 이해관계 조율을 위한 비가시적 작전의 연장선이다.
대사관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활동하는 화이트 요원들이 공식 채널이라면,
우리 같은 블랙 요원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움직인다.
현대 사회에서 ‘적국’이라는 개념은 느슨하다.
결국, 우리 자신 외에는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정보 세계의 기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국의 활동은 명백히 ‘선을 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한국의 기업 내부를 노리고 있다.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구조적 침투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곧 지속적인 영향력 확보, 그리고 정책적·경제적 종속을 의미한다.
이런 작전은 대개 수년 단위로 설계되며,
실행에는 막대한 자금과 수많은 현지 협력자,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NK은행 해킹 사건 이후로
중국 요원들의 움직임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졌다.
정해진 수순이 아니라, 예정에 없던 가속이다.
마치 누군가가, 계획 전체를 수정하면서까지 무언가를 ‘막거나, 실행하려는’ 움직임.
이건 통상적인 정보전의 리듬이 아니다.
그 가운데, 백준기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처음엔 눈에 띌 이유가 없는, 평범한 민간인.
기업체 대표이긴 하지만, 정보 작전과는 거리가 먼 위치.
그런데, 그의 계좌에 이해할 수 없는 출처의 암호화폐가 유입되었고,
그 후로 복수의 외부 접촉, 정보 교란, 수상한 추적 회피 패턴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가 누군가의 꼭두각시이거나, 아주 운 나쁜 행인이라면,
여기서 정리되어야 할 존재다.
하지만—
며칠 동안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그의 반응, 판단, 몸의 방향, 시선 하나하나를 분석하면서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두려워하고 있었고, 당황해 있었으며, 몰랐지만— 동시에, ‘버티고’ 있었다.
위험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최소한의 판단력을 유지하며,
필요한 순간에 도망치고, 가려야 할 것을 감추는 본능.
그건 단지 운이 좋거나 눈치 빠른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이 아니다.
자기 보호에 대한 본능적 직감,
그리고 아주 미세한 **비전문가의 ‘불균형한 감각’**이,
오히려 나에게는 예상 밖의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그는 누군가의 말단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말려든 피해자일 수도 있다.
혹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전혀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그 가능성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 변수는… 생각보다 위험하거나,
혹은 생각보다 중요할 수 있다.
14. 그날, 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