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균형의 기술
스물네 번째 이야기
– 현실적인 균형의 기술
회사를 다니다 보면 우리는 늘 두 가지 사이에서 줄을 탄다.
하나는 숫자, 하나는 사람이다.
엑셀에 찍힌 수치, KPI, 예산, 인건비, 성과 지표.
그리고 그 숫자 뒤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동료, 나 자신, 한 사람의 하루.
문제는 둘 중 하나만 붙들고는 결국 어느 쪽도 지키기 어렵다는 데 있다.
1) 엑셀 화면과 메신저 알림 사이에서
아침에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나를 반기는 건 숫자였다.
전날까지의 실적, 이번 달 목표 대비 달성률, 비용 집행 현황, 인력 계획, 인건비 비율.
조금만 늦으면 메신저가 울린다.
“이거 수치 한 번만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이번 분기 목표, 이 속도로 가면 괜찮을까요?”
한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상당수가 “업무량 그 자체”보다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더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일을 하는 동시에 늘 숫자를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2) 숫자는 분명 필요한데, 왜 사람을 갉아먹을까
숫자는 필요하다. 성과를 측정해야 개선도 할 수 있고, 예산을 알아야 조직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숫자가 전부가 되는 순간, 사람은 세 가지 방식으로 조용히 닳아간다.
① “사람”이 아니라 “지표”로 보이기 시작할 때
“저 친구는 올해 성과지표가 아쉬워.” “저 팀은 비용 대비 효율이 안 나와.”
이 말들이 반복될수록, 사람의 사연과 맥락은 화면 밖으로 밀려난다.
②단기 숫자가 장기 관계를 잠식할 때
이번 분기 실적을 위해 팀에 무리한 목표를 강요하고, “이번만 버티자”며 사람을 갈아 넣는다.
그 결과, 숫자는 맞춰졌는데 팀의 신뢰와 온도는 함께 깎인다. 실제로 한 대규모 분석에선 독성적인 문화가 보상 수준보다도 퇴사율을 훨씬 더 강하게 예측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③숫자를 맞추는 사람이 ‘나 자신’을 잃을 때
“이게 정말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인가?” “나는 지금 사람을 보고 있나, 지표를 보고 있나?”
이런 질문이 사라지면 일은 더 빠르게 굴러가도 사람은 점점 무너진다.
3) 숫자와 사람 사이, 우리가 놓치기 쉬운 오해들
숫자를 다루는 직장인들이 자주 하는 오해가 있다.
· “나는 감정 말고 팩트를 보는 사람이다.”
→ 하지만 숫자를 해석하는 순간 이미 ‘사람의 시선’이 개입된다.
· “사람을 챙기면 효율이 떨어진다.”
→ 실제로는 반대로, 관계와 신뢰가 무너진 조직에서 숫자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 “나는 어차피 중간에서 치이는 입장일 뿐이다.”
→ 그래서 더 중요하다.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이 숫자만 위로 전달할지, 사람의 목소리를 함께 올릴지에 따라 조직의 얼굴이 달라진다.
4) 현실적인 균형을 위한 네 가지 질문
숫자와 사람 사이에서 매일 흔들리는 직장인들에게 너무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질문들을 남겨본다.
①“이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목표를 위해 실제로 야근을 하는 사람, 휴가를 미루고 있는 사람, 책임을 떠안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②“이 지표가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부르고 있는가?”
이 KPI가 건강한 협업을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서로를 원망하게 만드는지 한 번쯤 점검해 본다.
③“오늘 내가 챙긴 숫자만큼, 사람도 챙겼는가?”
보고서는 몇 개를 봤는지 말할 수 있지만 오늘 누구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자.
④“내가 이 숫자에 동의하는가?”
‘위에서 정한 거니까’가 아니라 내가 설득당할 수 있는 목표인지, 최소한 내 양심과 직업관을 지키는 선 안에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5) 숫자와 사람 사이에서, 결국 지켜야 할 것
우리는 숫자가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숫자만 있는 일도 오래 할 수 없다.
조직은 숫자로 움직이지만, 사람은 결국 관계와 의미로 움직인다.
그래서 숫자와 사람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직장인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 숫자를 무시하지 말되, 숫자가 사람을 지워버리는 순간에는 반드시 질문을 던질 것.
· 나의 기준과 양심을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을 스스로 정해둘 것.
· 오늘도 숫자를 맞추느라 애쓴 나 자신에게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버티고 있다”는 한 마디를 건넬 것.
숫자는 조직을 움직이게 하고, 사람은 그 조직이 버틸 수 있게 한다.
둘 사이의 줄을 타는 우리는 어느 한쪽을 완전히 놓지 말아야 한다.
#리더십 #조직문화 #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