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이 너무나 필요한 요즘의 나
유일한 외출은 병원 가는 일밖에 없게 되어버린 이후, 내가 그동안 성과를 이뤘던 일들, 예를 들어 그 당시에는 엄청 힘들게 했던 미국 유학 생활과 야근을 밥먹듯이 했던 내 첫 직장생활을 생각해 볼 때,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힘들어했던 건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목표가 있었다면, 그 목표를 위해 그 힘들었던 시간을 버텨냈던 거라고 나 자신을 위로할 명분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명분이 없다. 무엇인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했던 적이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나는 무슨 일을 하기도 전에 너무나 생각과 고민이 많아서 정작 그 일을 실행하기 전에 벌써 지쳐버렸던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갑자기 환자 신세가 되어서 병원만 왔다 갔다 할 거였으면 내가 지금까지 했던 수많은 걱정과 고민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한 순간에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부질없게 되어버리는 듯한 이 감정이, 나를 제일 못 견디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결국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 ‘라는 말에 너무 공감이 되었고, 나는 내가 환자가 되어서 이런 말에 공감을 하게 되는 자체가 못 견디게 싫다. 아니, 나는 누군가에게 공감을 잘해주는 성향이지만, 이런 말에, 이런 방식으로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은 일이다.
환자가 된 후 나는 내가 하고 있던 SNS와 몇 명밖에 없는 가끔 연락하고 지냈던 친구들과의 연락마저 다 끊었다. 내가 끊었다기보다 나의 사정을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는 관계의 사람들이었기에 굳이 내 상황을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자연스레 연락이 거의 끊어졌고 나는 의도치 않은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것 같다.
나는 티비를 많이 보진 않지만 요즘 재미있게 보는 것이 있는데 만화로 하는 ‘빨강머리 앤’이다. 왠지 그 만화를 보면서 주인공 앤의 긍정적인 태도를 많이 배우는 것 같다. 앤은 어떻게 보면 내가 앤의 나이였을 때보다 정말 안 좋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긍정적인 자세로 헤쳐 나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라서 가능한 게 아닐까? 만약 앤이 내 상황이었더라도, 앤이 암에 걸렸다고 가정했을 때, 그 상황에서도 앤은 저렇게 긍정적안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빨강머리 앤’을 보면서 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너라면, 지금 내 상황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나갈 거냐고, 이런 상황에서도 네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상상력으로 극복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병이 다 나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 나에게도 기적이 올 수 있는 거냐고. 나도 소설 속의 앤처럼 긍정적으로 살고 싶지만, 앤도 만약 나의 상황이라면, 그렇게 마냥 긍정적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현실과 이상은 얼마나 다른지, 나는 이것마저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앤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상상력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내는 힘이 지금 너무 절실히 필요하다. 앤이 정말 그 만화에서 나와서 내게 긍정적인 사람으로 되는 방법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들 만큼, 나는 긍정의 힘이 지금 너무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