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직까지 물어보지 못한 말
“설 씨, 혹시 준식 씨랑 사귀는 사이야? “
매일 오전마다 업무 때문에 봐야 해서 친해진 여자 대리님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속으로는 정말 당황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에이, 아니에요. 나이가 같아서 많이 친해져서 사람들이 그렇게 보나 봐요. “
대리님한테 결재 서류를 전달하고 나와서 회사 복도를 걸어가며 속으로 ’ 망했다 ‘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왜냐면 내가 다니던 회사는 나이를 많이 먹은 미혼인 여자 과장님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내 연애를 한다는 것은, 마치 회사 생활의 험한 길을 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역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 내 자리에 돌아왔지만, 그 질문을 받은 뒤로 내내 일에 집중이 안되고 퇴근 시간까지 어떻게 일을 했는지도 모를 만큼 내 머릿속은 ‘이제 큰일 났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내가 아무래도 그동안 그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너무 티 내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누구를 그렇게 많이 좋아한 적이 처음이어서, ’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소문이 회사에 다 퍼지다니!
이것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며칠 후에 그 여자 대리님이랑 얘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회사에 퍼졌던 소문의 진상은 “처음에는 설 씨가 준식 씨를 좋아했는데 나중에는 준식 씨가 설 씨를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의 첫 부분은 나 자신조차도 그때도, 퇴사한 지금도, 동의할 수밖에 없지만, 이 소문의 뒷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도 의문이 든다. ‘그 남자가 나를 좋아했다고?’ 내가 그렇게 남자 때문에 속상해하고 힘들었던 적이 그 남자가 처음이었다. 언제나 그 남자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매번 나 혼자만 그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 때문이었다. 나는 언젠가 그 남자한테 물어보고 싶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네가 나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냐고. 좋아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때로는 남자친구같이 굴었냐고. 물어보고 싶은 것은 참 많았지만, 결국 나는 그 모든 걸 물어보지 못한 채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지금은 서로 연락도 못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