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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빛나게 하는 사람

긴 생각 짧은 글

by 지유


누군가의 SNS에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소환됐었다. 나무꾼에게서 날개옷을 돌려받은 선녀가 하늘나라로 돌아간 이유를 논하는 대목이었다. 평범한 나무꾼이 선녀를 빛나게 해주지 못했으므로 선녀가 하늘로 돌아간 거라고 했었다. 글쓴이는 누군가의 옆에서 빛을 내게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친 돌을 갈고 다듬어 빛날 때까지 어쩌면 수많은 폭력과 외부의 물리적인 힘이 가해질 것 아닌가. 게다가 나무꾼은 선녀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세상 물정 모르고 인간의 살림도 못 꾸려봤을 선녀와 사는 일은 인형을 모시고 사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선녀라면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테니, 선녀는 스스로 빛을 냈어야 했다. 그랬다면 굳이 하늘로 돌아갈 필요 없이 나무꾼과 더 오래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요 며칠 마음고생이 심했다. 준비 기간이 짧아 퇴고를 충분히 하지 못한 글을 공모전에 보냈었다. 여지없이 탈락했다. 준비 기간이 짧았다는 건 변명이고 나의 글이 한없이 부족했으리라.

영 기분이 씁쓸하던 차에 작은 직책을 맡아 일하던 모임에서 잡음이 들렸다. 성격 좋아 보이던 한 회원이 뭔가 심사가 뒤틀렸는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았다. 모임에서 탈퇴하겠다며 그 이유로 내 이름을 앞세웠다. 자기에게 더 눈에 띄는 직책을 맡기지 않자 질투가 났고, 나가려는 명분을 나에게 씌우려는 생각으로 보였다. 그 사람에게 내가 뭘 어떻게 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더 억울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고, 돌고 돌아 내 귀에까지 들어온 험담으로 마음을 다쳤다. 늘 나를 채우던 자신감과 긍정의 불꽃이 깜빡거리며 작아지고 있었다.


작은 인연도 소중하다고, 하찮은 관계는 어디에고 없다고 믿어온 나였다. 본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헌신짝 벗어던지듯 인연을 차버린 신발에, 이마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런 일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 울기에는 너무 나이 들었고 아무렇지 않기에는 속이 쓰렸다. 그 사람에게 그럴만한 빌미를 준 적이 있었나 곱씹으며 자기반성도 했다. 여전히 덜 여문 나였나 보다. 순수하게 봉사하는 직책에 갑자기 오만 정이 떨어져서 다 벗어버리고 싶었다. 외출도 귀찮아져서 되도록 약속도 잡지 않았다. 다친 마음을 치유할 나만의 동굴이 필요했다.


서평가 김미옥이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의 삶에 전력투구하는 거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늘 하던 대로 책을 읽고 무언가를 쓰려고 애썼고, 모임에서 맡은 일도 묵묵히 해냈다. 자기 기분대로 인연의 끈을 뚝 끊는 사람 때문에 내 생활이 무너지진 않겠다고 되뇌면서. 속상한 일을 머릿속과 관심에서 덜어내고 나와 가족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남편과 며칠 동안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를 마지막 회까지 챙겨보았다. 주인공이 죽는 장면에서는 휴지로 코까지 풀며 시원하게 울었다. 드라마에 기대어 속상한 마음을 실컷 쏟아낸 셈이다.

다음 날에는 혼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 점심인데도 삼겹살을 굽고 상추에 쌈을 싸서 “와앙.” 큰소리를 내며 함께 먹었다. 3주 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계셨다면 무슨 말이든 내 기분이 좋아질 응원을 해주셨을 텐데, 아쉬웠다. 아버지에게는 속상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맘때면 네 엄마가 나물을 맛있게 무쳐주었지.” 아버지와 오붓하게 점심을 먹으며 엄마를 추억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안다. 질투가 얼마나 날카롭게 자신과 타인을 벼리는지, 얼마나 위험한 칼인지, 얼마나 자기 마음에 몹쓸 구멍을 내고야 마는지 본 적이 있다. 결국, 아플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니 마음이 괜찮아졌다. 날 헐뜯던 사람에 대한 연민도 생겨났다.


자기 안에 빛을 가진 사람은 쉽게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다. 혹 상처받았더라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가졌다고 믿고 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떼를 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누군가 옆에서 빛내주지 않아도 자기만의 색채와 빛으로 알아서 빛을 낸다. 그 빛은 어떤 일에 남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감싸는 따스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러고 싶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세상과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무해한 사람. 나를 빛나게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선녀도 알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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