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여행가
불길이 타오르던 산 아래 바다는
붉은빛이었을까
어쩌지 못하고 애태우던 파도는
검은빛이었을까
주저함이 없는 불길은
여지도 남기지 않은 채
산하를 할퀴었고
산불이 지나간 기슭의 나무는
옷을 벗어 부끄러운 아이처럼
몸을 틀었다
키 작은 나무의 광합성을 위해
키 큰 나무가 바꾸었을 잎의 방향은
한낱 부질없어 보였다
머리채 잡히듯 푸른 솔잎 다 털리고
불길에 고문당하면서
뿌리라도 지키려 애쓴 자욱이
시커멓게 남아있었다
한밤의 산짐승은
불에 타 물속보다 검은 나무를
어떻게 피해 다닐까
어둠을 더듬던 발자욱을 떠올렸다
그을린 산하를 지날 때 하필
양팔에 고압 전기가 닿아
몸통만 남은 몽골인 노동자 오기나의
소식을 들었다
달려오던 것이 벼랑 끝에 멈춘 듯
뜨거운 불길이 스친 자국은
오래 서 있던 나무와
갓 자란 나무의 구분을 지우고
화끈거리는 마음으로
그을린 길을 지날 때 엉뚱하게도
나는 몽골인의 팔이
새로 돋아나는 꿈을 꾸었다
가끔 우리 생에는
불가능한 꿈이 필요했으므로
의성 지나 안동, 안동 아래 영덕에는
바리깡에 밀린 머리가
두서없이 자란듯한 산등성이
숯이 돼버린 소나무 기둥 사이로
어린 초록이 자라고 있었다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