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멎었고,
그의 그림자가 내 앞에 멈췄다.
나는 오래 전의 숨결을 기억했다.
그 눈빛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이젠 나를 태우지 않았다.
달빛이 우리 사이를 스치자
얇은 유리잔이 흔들렸다.
그의 비워진 마음 위로
투명한 떨림이 맺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눈을 들지 않았다.
그저 숨과 숨 사이에
빛이 머물렀다.
그때 나는 알았다.
사랑은 불이 아니라,
불을 식히며 남은
깨지지 않으려 애쓰는
투명한 잔이었다.
나는 다만,
너라는 달빛이 다시 스며들 때까지
비워진 잔의 온도를 지킨다.
달빛은 언제나 잔을 채운다.
가득 차지 않아도 좋다.
흔들리며 쏟아질 듯 넘치지 않는 그 경계에서
사랑은 가장 고요하게 숨 쉰다.
유리는 결국 깨지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깨짐조차 빛을 품는다.
나는 오늘도,
너의 빛이 닿는 쪽으로 잔을 들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