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고요히 파고드는 계절
그가 말했다.
“가을이니 단풍도 볼 겸, 밝은 달관 별채에 가서 식사하자.”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그는 불쑥 내게 물었다.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정식으로 약혼하면,
같이 여행도 갈 수 있을까?
요즘 근육통이 좀 심해서… 따뜻한 료칸이 그리워.”
나는 대답 대신 살며시 웃었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고요한 언덕이 있다는 게
늘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 새롭게 느껴졌다.
별채의 정원엔 단풍잎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낮은 돌담을 따라 바람이 흘러가고,
어디선가 불빛이 스며들어
식탁 위 그릇들에 노을이 닿았다.
따로 떨어진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직원이 조용히 불을 피웠고
오마카세가 차례로 나왔다.
그는 와인잔을 손끝으로 굴리며 말했다.
“너를 만나고 나면 늘 듣는 곡이 있어.”
비올라와 피아노가 나란히 숨을 섞는, 오래된 19세기의 곡이었다.
(유튜브에 없어 바이올린과 피아노 버전 올립니다)
그 멜로디가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 어딘가에도
단풍이 바람을 따라 천천히 흩날린다.
사랑이란 게 불꽃처럼 타오르는 게 아니라,
온도처럼 스며드는 것임을 그날, 나는 마음 깊이
느꼈다.
계절이 바뀌어 가도
그의 눈빛은 언제나 완연한 가을의 온도였다.
따뜻하지만, 조금은 차분하고 진지한 온도.
나는 그 온도를 언제나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