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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불꽃이에요.

아이의 말은 거울이었다.

by 이지애

“엄마, 나는 착한 아이 같지만 불꽃이에요.
화가 나면 불꽃이 돼요.
그런데 그건 엄마도 같아요.”



아이의 말은 웃기면서도 아팠다.
정곡을 찔린 기분.
나는 그 순간에도 반박할 말이 떠올랐지만, 그냥 삼켰다.
맞으니까.


요즘 아이는 유치원에서 한 친구 때문에 힘들어한다.
함께 놀고 싶은데 거절당하거나,

함께 놀기 싫은데 싫다고 해도 거절을 거절 당하거나,

결국 거절을 못하고 모두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자하는 아이의 노력.
그 작은 사건들이 아이를 지치게 한다.
그리고 그 피로는 집에 와서 나와 남편을 향한다.

예민한 기질.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오래전부터 살아온 방식이니까.
아이가 나를 닮았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며칠 전, 우리는 크게 부딪혔다.
아이는 이유 없이 떼를 쓰고,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규칙은 지켜야 한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더 커졌고, 나도 함께 커졌다.
말은 칼처럼 오갔고,

결국 나는 “그럼 나가라”는 말까지 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그 순간부터 이미 후회는 시작됐다.

30분쯤 대치했다.
불꽃이 부딪히는 것 같았다.
공기가 뜨겁고, 방 안이 좁아졌다.

끝은 늘 똑같다.
내가 아이를 안았다.
그러자 아이는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엄마도 불꽃이에요.”



불꽃.
아이의 표현은 놀라웠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을까.
아이의 눈에 나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결국 안아야 꺼지는 사람.

는 아이의 말에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불꽃은 아이만이 아니라 나의 정체이기도 했다.



나는 HSP다.
작은 표정 하나, 무심한 말투 하나에도 쉽게 흔들린다.
동네 친구의 짧은 한마디를 곱씹으며 며칠을 힘들어했다.
엄마 친구의 표정 하나에도 불편해졌다.
결국 그 피로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흘러갔다.

아이는 나를 닮았다.
유치원에서 받은 상처를 집에서 터뜨린다.
그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풀었다.
그리고 똑같이 후회했다.



한 독자가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HSP라서 더 공감 능력이 뛰어날 수도 있어요.”

처음엔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보니 알 것 같았다.
자신을 불꽃이라 말하는 아이.
그리고 동시에 나도 불꽃이라고 지목하는 아이.
그건 투정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자신과 나를 같은 자리에서 본 것이다.



불꽃은 위험하다.
쉽게 타오르고, 쉽게 태운다.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불꽃은 따뜻하다.

몸을 덥히고, 어둠을 밝힌다.

결국 중요한 건 불꽃을 없애는 게 아니라,
불꽃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그날 우리를 살린 건 규칙도, 훈계도 아니었다.

포옹이었다.

말보다 먼저 안아주는 것.

그제야 불꽃은 불씨로 줄어들었다.




나는 여전히 불꽃이다.
남편의 한숨, 아이의 칭얼거림, 누군가의 무심한 표정에도 쉽게 타오른다.
그건 고칠 수 없는 기질이다.

하지만 다르게 다룰 수는 있다.
억누르지 않고, 인정하면서, 불꽃을 껴안는 방식으로.



아이의 말은 내 거울이었다.
“엄마도 불꽃이에요.”
나는 그 거울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작은 연습을 이어간다.
불꽃을 없애려 하지 않고,
불꽃을 다정으로 길들이는 연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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