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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철 Dec 19. 2019

가난하지 않지만 가난하다고 느낄 때

통장이 텅장이 되는 날

회사가 인정사정없이 나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을 때. 충전하는 날이 있다. 

바로 월급날이다. 하루라도 늦었다면 그냥 확 때려치울 뻔했지만, 다행히 월급통장엔 숫자가 찍혀있다. 월급통장에 찍힌 숫자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게 다 너의 시간과 땀이야.”     


한 달간 개고생의 보상이 통장에 찍히는 숫자라니 턱없이 부족해 보이기만 하다. 그래도 하루 종일 즐겁게 이 숫자들을 어떻게 굴릴까 고민한다. 뜬금없지만 회사가 고맙고 앞으로 충성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아주 잠~깐) 해본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퇴근 시간 즈음되면 기다렸다는 듯 보기 싫은 문자가 날아온다. 


웹발신! 출금! 출금! 출금! 카드값! 보험료! 통신비! 


쭈우욱 밀물처럼 쓸려나가는 잔고를 보며 한 달 뒤를 기약한다. 이래서 회사를 끊지 못하나 보다. 

아침엔 부자 같았지만 이내 현타가 오고 돈을 굴려 부자가 되어야지!라는 생각 따윈 사치라는 생각을 하며 퇴근길에 나선다. 


퇴근 후 오랜만에 TV를 켜고 어른답게 뉴스를 본다.(9시 뉴스 아니다 11시 뉴스다) 뉴스에는 서울에 집값이 평균 몇 억 이라는 둥, 집값이 얼마 올랐다는 둥, 금리가 어쩌고 저쩌고 딴 세상 이야기만 가득하다. 

숨만 쉬고 20년은 모아야 집 한 채 얻을 수 있을까? SNS에서 슈퍼카를 타며 자랑질하는 사진을 보며 생애 한번 타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결국 사치다. 그냥 남의 세상 이야기를 보자면 현타와 짜증만 늘어날 뿐이다. 


어차피 딴 세상 이야기 굳이 들어서 뭐하나. 

스트레스가 늘기 전에 내 살이나 늘리자라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배달해주세요~”     


씁쓸한 월급날 치느님으로 한 달간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선사한다. 

고생했다. 치킨이나 먹고 힘내자. 

역시 힘이 되는 건 치킨 뿐이네.  

   


#월급때문에회사를사랑할뻔했어

#가장맛있는치킨은저녁에먹는치킨

#뉴스엔온통딴세상이야기

#치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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